계획 소비와 충동구매
나는 소비에 신중한 편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필요성에 대한 고민을 몇 번이고 하고 구매를 결정한다.
세월이 쌓이자 이런 태도는 아예 소비 습관으로 굳어졌다.
우리 집 가구는 거의 혼수로 준비해 온 것이라 30년이 넘었고, 최근 것이라 해도 대부분 십 년은 족히 넘었다.
여행이 잦은 나는 '사람에게 필요한 건 트렁크 두 개 안에 다 있다'는 지론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더 이상의 물건을 늘리지 않고 살려고 노력하고 있고, 얼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이성을 잃고(?) 허우적댄 곳이 있었으니, '지브리 스튜디오'였다.
작년 여름, ‘은퇴 설계 연수’ 중에 들른 송당마을. 그곳에서 나는 뜻밖의 보물섬을 발견했다.
만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거의 섭렵했다.
<이웃집 토토로>, <붉은 돼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천공의 성 라퓨타> 등
그중에서 나는 <이웃집 토토로>와 <붉은 돼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특히 좋아한다.
그러니 토토로의 유혹을 야멸차게 뿌리치고 나오는 게 맞나 싶었다.
머그잔 하나에 사만오천 원. 찻잔과 받침 세트는 무려 팔만오천 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머그잔에 진심인 나는 이미 특별한 머그잔을 네댓 개나 갖고 있었기에 또 늘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되었다.
나란히 누워 있는 머그잔에서 그날의 기분에 따라 하나를 골라 커피는 내리는 일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소소하지만 정성스러운 존중이다.
대문자 T와 J인 내게 충동구매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날은 마음속에 파문이 일렁이다 결국 쓰나미처럼 커졌다.
결국 안 사야 하는 백만 가지의 이유를 제치고, 사야 할 한 가지의 이유로 계산대에 섰다.
'너는 사도 돼!'
지극히 이기적이고, 신포도의 비유처럼 비논리적이고 어찌 보면 궁색한 변명이었지만....
나는 기꺼이 그 한 가지 이유에 손을 들어주었다.
세트를 살까, 하나만 살까, 아예 안 살까.
세 가지 선택지 중 누구에게도 별말 들을 것 없는 ‘중간값’에 체크하며, 충동구매의 오명을 교묘히 피해 보았다.
여전히 실버 세대의 소비는 뜨거운 논쟁거리이다.
유튜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백세 시대를 대비하려면 소비를 줄여라’는 조언이 쏟아진다.
하지만 또래들의 병사와 돌연사가 예사로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강하게 이런 생각이 스친다.
'아껴서 뭐 해? 다 쓰고 죽어야지!'
결국 그 극단 사이 어딘가에서 항상 타협 중이다.
우리 집으로 입양된 토토로는 나와 자주 아침식사를 같이 한다.
그 귀여운 녀석과 함께하는 식사는 아밀라아제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그럼 되었지, 뭐.
이보다 더한 소비의 이유를 뭘 또 찾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