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과 생기는 것

걸어봐야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감상

by 게을러영

우리 집에서 시내를 갈 때 항상 통과하는 터널

오 년 전쯤 뚫렸는데 이름도 없다.

용담초에서 터널을 통과하여 향교까지 걷는 길은

7~80년대 감성이 살아있는 옛 동네이다. (上)


폐허는 그리는 사람에게 멋진 소재이다.

시내를 걸어 다니는 내게 발견된 탑동 어디쯤인 곳

저 집도 언제는 햇살 아래

아이들의 웃음이 있는 빨랫줄이 걸려 있었을게다.

삶은 그런 식으로 소진되고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온다. (中)


평소 내가 애용하는 등산코스 초입의 풍경

17년 전쯤 이사 와서 일주일에 두 번 꼴로 올라갔으니

천 번도 더 다닌 길이다.

올봄은 일찍 감치 노란 산수유가 만개하였다.

이렇게 봄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왔다. (下)




이 세 개의 그림은 모두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오랜 동네의 모습들이다.

내가 자주 다니는 길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게 되었다.


첫 번째 그림의 터널은 최근에 생긴 것이다.

왕래가 거의 없어서 더운 여름에는 할머니들의 놀이터가 된다.

돗자리와 폐소파를 갖다 놓고는 오가는 사람들을 훑어보신다.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소변 금지'와 '가져가지 마시오'를 써서 붙이셨는데 너무 정감 있다.


폐허를 그린 것이 이년 반 전인데, 여전히 저 모습을 하고 있다.

지대가 낮고 평수가 작아서 그런지 누가 선뜻 구매하지 않나 보다.

요즘은 일부러 저런 폐가를 사서 서까래를 살려서 리모델링을 하는 것이 유행이지만,

그것도 살릴 만한 서까래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내가 열 살도 되기 전쯤 나도 저런 곳에서 살았다.

중앙에 우물이 있어서 셋집의 아줌마들이 모여 거기서 빨래하고 수다를 떠는 곳이었다.

빨랫비누로 머리 감으라는 엄마의 명을 어기고 세숫비누로 감다가

등짝 스매싱을 당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추억을 상기하며 저 뚫린 담으로 살짝 들어가 봤다. 저 시멘트 담장도 딱 그 당시의 모습이다.


아래 그림의 흰 벽의 집도 당시에는 아주 흔한 집이었다.

창문이 작고 높은 곳에 있는데, X모양으로 연결된 철창까지 장착한 곳이 많았다.

또 건물과 연결되어 담과 대문이 있다.

안채와 바깥채로 구성되어 있고 저 집은 바깥채의 모습이다.

대부분 안채는 주인이 거주하고 바깥채는 세입자가 산다.

나도 어릴 적 바깥채에 세를 살았다.


그런데 축대가 반쯤 무너져서 장마 때는 위험을 도사리고 있다.

저렇게 언제 무너질지도 모를 그럴 위험을 안고 산다.

그게 가난의 모습이다.

산수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노란 숲을 이루어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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