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oston 24. 보스턴에서 만난 사람들

여행 25. 보스턴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소회

by 게을러영

Visitor인데 Resident처럼 지내요 (24)


보스턴에서 만난 인연들이 있다.

아마 내가 패키지 여행을 갔더라면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을 현지인들과의 만남과 현지 가정 방문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내가 보스턴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들의 인연으로 인한 사람들이다.

그중 아들과 현재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J와 A는 머무는 동안 거의 매일 만났던 사람들이다.

둘 다 이십 대의 젊은 친구들이었다.


J는 MIT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현재 창업하여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사업가인 애플의 스티브잡스, 구글의 래리페이지, 아마존의 제프베조스도 처음 사업을 시작한 장소는 모두 Garage(차고)였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젊은이가 사무실 임대료라도 아끼려고 그렇게 시작하듯 J도 차고에 연구실을 만들어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J를 ‘힐스잡스’라고 불렀다. 동네 이름인 힐스와 스티브 잡스를 합성해서 만든 이름인데 본인도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성격이 활달하고 붙임성이 좋으며 특히 넉살이 아주 좋다.

내가 만들어 준 음식들을 먹을 때 항상 ‘Two thumbs up!(엄지손가락 두 개를 올린다는 뜻으로 정말 최고야! 라는 표현)’을 하면서 고마움을 표현한다.

엄마라는 발음이 되지 않아서 항상 나한테 ‘음마(Umma)’라고 부르는데 항상 활짝 웃으면서 그렇게 부르니 녹아들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녀석의 음마소리가 그립다.)


내가 보스턴을 떠나기 이틀 전 J는 편찮으신 할머니를 뵈러 다음날 새벽 장장 12시간의 운전을 해서 오하이오로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차를 마시며 짧은 이별을 했다.

‘무서운 게 정’이라고 한 달 동안 흠뻑 정이 들었는지 J를 안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다. 등을 두드리며 “넌 분명히 성공할거야! 그러니까 지금 페이스대로 건강 잘 챙기면서 연구해”라고 했더니, 옛썰~!”하며 밝은 미소와 함께 거수경례를 했다.

물론 그 아이도 내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었다.


또 다른 친구는 A이다.

셋 중 막내였고, 우리 아들보다 다섯 살이나 어리지만 서로를 부를 때는 늘 이름뿐이다.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곳에서는 당연한 방식이라 나도 곧 익숙해졌다. 하버드에서 학부를 마치고 현재는 MIT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다. 그런데 전공만큼이나 그가 관심을 갖고 깊이 파고드는 건 놀랍게도 한국어와 한국 문화다. 한국어는 벌써 1년째 공부 중이고, 한자까지 독학으로 파고드는 걸 보면 거의 천재가 아닐까 싶다.

한문 부전공을 한 나를 깜짝 놀라게 할 만큼 한문에 대한 지식이 넓었다. 식사 중 나눈 대화에서 그 아이가 풀어내는 한자 어휘와 어원에 대한 지식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단순히 암기가 아니라 언어와 역사, 문화까지 꿰뚫고 있을 만큼 깊이가 느껴졌다.


성격은 아주 차분한 편이고 말이 많지 않다. 감사의 표현은 늘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진심이 묻어난다.

A의 또 다른 재능은 요리였다. 이탈리아계 조부의 영향인지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수준급으로 해 낸다. 있는 동안 파스타, 양고기 스테이크, 직접 구운 빵까지 다양하게 대접받았는데, 그중 단연 압권은 카르보나라였다. 크림 없이 계란을 휘핑해 만든 진짜 소스의 깊은 맛.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정통의 풍미였다.

조용한 성격, 깊은 지식, 진심 어린 태도, 그리고 훌륭한 요리까지.

A는 말 그대로 조용한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다.


셋의 인연은 대학 동아리에서 시작한다. 함께 운동을 하며 가까워진 이들은 자주 어울리게 되었고, 결국은 한집에 살 정도로 돈독해졌다.

그렇게 친한 사이지만, 내가 한 달간 지켜본 그들의 관계는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히 존중되는 모습이었다. 셋이 함께 모여 식사할 땐 유쾌하고 활기차지만, 각자의 일상과 공간은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집안일의 분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정원 손질이나 차고 정리 같은 외부 일은 아들과 J가 도맡고, 요리는 솜씨 좋은 A가 종종 특별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아침은 각자 알아서 챙겨 먹는 분위기다. 한국적인 정서 탓에 나는 혼자 아침을 먹는 게 어색해서 기상 시간이 비슷한 A에게 같이 먹자고 몇 번 제안했지만, 그는 늘 정중하게 웃으며 사양했다. 그러고는 조용히 스크램블에그를 해 먹곤 했다.


A의 부모님은 우리 집에서 1시간 정도 거리에 사신다. 마침 내가 머무는 동안 A의 생일이 있어서 미역국에 잡채, 불고기, 전등 한국식 생일상을 차려주었다. A는 크게 감동 받았고, 이 생일상을 자기 부모님께 자랑을 했나 보다.


며칠 후, 그의 부모님으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혹시 몰라서 가져온 한국산 설록차 세트를 정성껏 포장해 선물로 들고 갔는데, 예상보다 훨씬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국적인 포장과 향에 모두 감탄하며 좋아하셨다.

나는 그날 이탈리아 전통 코스 요리를 대접받았다. 식탁 위에는 종류도 다양한 치즈가 올랐는데, 딱딱한 숙성 치즈부터 꼬릿한 향이 진한 고급 치즈까지, 그 풍미가 잊히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눈에 선할 만큼 정성스럽고 훌륭한 한 끼였다.


A의 엄마는 나와 동갑이었다.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데, 자연스레 나이듦과 건강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아들에 대한 자부심을 조용하게 표현하면서도 내 아들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 아들을 칭찬하는 모습을 보며 두 아들들은 배틀하냐며 파안대소를 하였다.

혹시 한국에 오게 되면 꼭 연락달라는 나의 진심에 그녀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서로의 건강을 빌며 세 시간 남짓의 따뜻한 초대는 그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다.


미국에 와서 서양문화에 대해 새롭게 배우게 된 것이 꽤 많다. 그중 하나를 소개하면,

J가 이틀 정도 외박을 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오랜만에 마주친 그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여서 나는 무심결에 “어디 아프니?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아?”라며 걱정 어린 표정과 말을 건넸다. 그런데 곁에 있던 아들이 슬며시 주의를 주었다.

“그런 말, 여기서는 하면 안 돼요. 외모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은 무례한 걸로 여겨져요.”

우리나라에서도 외모를 평가하는 말은 절대 금물이지만, 적어도 걱정과 염려를 해서 하는 말은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대가 듣기 불편할 수 있는 말은,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할지라도 삼가는 것이 예의인 듯했다. 문화는 다르고, 예민한 지점도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서든 비슷하다.

웃고, 울고, 오해하고, 감동하고…

희로애락은 국경을 넘고 문화를 넘어 흐른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하느냐는 오롯이 개인의 몫이다.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경험한 이 미국 젊은이들과의 동거는 큰 의미가 있었다.

문화도, 세대도 다른 이들과 부딪히며 지낸 그 시간은, 결코 기쁨만 가득하진 않았다. 때로는 조심스러웠고, 때로는 낯설고 때로는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런 감정 덕분에 나는 더 많이 배우고,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특별한 경험, 그것은 내 삶의 감각을 한층 더 넓혀 주었다.


이 캐리커처는 내가 그려서 그들에게 선물한 것이다.

그들은 무척이나 좋아했고, 각자의 공간에서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소중히 두었다.

내 그림과 정성을 소중히 다루어 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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