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과 참견은 동전의 양면

조언은 상대방이 원할 때만 하자.

by 게을러영
조충평판.jpg

조언도 상대가 묻지 않으면 간섭이다.

친절도 상대가 원치 않으면 참견이다.

좀 더 살았다고 아는 체하지 말자.

너나 잘하자.

상대방이 물어보기 전에는 절대 조충평판이 나오지 않도록 이를 앙 물자.




카톡 프로필을 바꾸었다.

출판한 책의 앞 뒷면과 차례를 찍은 사진으로.

유일하게 그 사진을 보고 연락해 온 사람이 있다. 벌써 십오 년을 알고 지내는 후배 샘이다.


- 책 출간하셨어요? ^^

- 출간은 아니고, 출판~~ㅎㅎ


곧이어 통화를 하며 삼십 분 넘게 수다를 떨었다.

근황에 대한, 미국 여행에 대한, 정치에 대한, 육아에 대한,.....

우리의 주제는 방향성 모르는 지랄탄처럼 사방팔방 목적도 없이 튀었고, 튄 지점에서 원점으로 돌아왔다 다시 벗어나기를 반복했다.

아! 지랄탄을 모르는 분이 더 많을 거 같아 부언하면, 최루탄의 일종이다.

여느 최루탄처럼 한 번만 터져 독성을 내뿜는 게 아니라 방향성을 바꾸어가며 시멘 바닥에 부딪칠 때마다 계속 터져서 독성의 진행 방향과 강도가 더 세서 지랄탄이라고 불렀다. 80년대 학번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와의 인연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십여 전 같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며 아끼게 된 후배 교사였다.

부산 출신인 그 선생님의 결혼식 날은 하필 서울 잠실 운동장에서 폴 매카트니 내한 공연이 있던 날이었다. 몇 달 전 힘들게 예매하고 오매불망 기다렸던 공연인데, 청첩장을 받고 보니 날짜가 겹쳐 있었다.

고민하다가 모두 참석하기로 마음먹고 강행군했다.

2015년 5월 2일.

그날은 그녀의 결혼기념일이자 내게는 가장 스펙터클한 하루였다.

아침 일찍 청주에서 대절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 결혼식장에 참석했다. 축하 인사를 건네고 부리나케 한 술 뜨고 이번에는 택시를 잡아 타고 부산역으로 직행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KTX에 몸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 공연을 만끽했다. 자정 무렵 청주행 심야 버스를 타고 새벽녘에야 귀가하니 녹초가 되었다.

그날 하루 결혼식 축하객, 콘서트 열혈 관객, 심야 버스 졸음 승객을 모두 소화해 낸 셈이다. 가히 연예인 못지않은 스케줄이었다.


그 후 그녀는 서울에서 근무하는 남자와 결혼하여 도간 전출로 경기도로 자리를 옮겼다.

동년배도 아니고 이모와 조카뻘쯤 되는 사이인 우리의 인연은 이어질 확률보다 끊어질 확률이 훨씬 높았다. 그런데도 묘하게 계속 이어졌다.

신혼 초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내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만혼에 임신이 되지 않는 스트레스를 나와 함께 풀기도 했다. 임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육아의 고충을 위로하면서 내 경험에 비춘 조언은 그때마다 빛을 발했다. 통화 말미에 항상 그녀는 속이 시원하다며 고마움을 표했으니 나는 그렇게 느낄 만했다.


우리 인연의 또 다른 날개는 그녀의 귀한 아들과도 연결된다.

며칠 전 통화에서도 그녀의 아들이 뭐라고 쫑알대는 것이 들렸다. 아마 우리의 긴 통화에 대한 칭얼거림일 것이다.

귀여운 그 녀석과 내 첫 손자는 동갑이다. 더구나 같은 달에 태어난 소중한 우연까지 겹쳤다.

수화기 건너로 들려오는 녀석의 말소리가 너무 이뻤다. 말 시키고 싶어서 바꿔 달라고 했더니,

후배는 "너 알지? 지난번 청주에서 감자탕 같이 먹었던 이모~~" 라며 녀석에게 날 인식시키기 바빴다.

나는 "이모는 무슨? 할머니이지." 라며 웃음으로 가로챘다.

"안녕하세요?....." 녀석의 블라블라가 너무 앙증맞았다.

내 손자를 겹치며 살갑게 통화를 마쳤다.


오늘 아침, 김누리 교수의 칼럼을 후배에게 전하며, 과거형이었던 교사가 현재형 교사에게 좋은 글을 건넨다는 뜻을 담았다.

후배는 '볼게요~ 선생님과의 대화가 계속될 수 있도록 저도 공부하고 책 읽어야겠어요~^^ '라는 이쁜 말도 곁들여서 별거 아닌 선배의 맘을 기쁘게 해 주었다.


딱 거기서 끝냈어야 했다.

괜히 두 줄을 더 보탰다.

그녀가 아들을 대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조언을 썼다. 먼저 겪은 자의 육아의 과오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저 그런 관계이면, 그저 그런 말만 하고 끝날 거야~ 내 진심 알지?' 라며 관계에 대한 믿음과 진심을 강조했다.


한참 뒤 그녀의 답장을 보고 단번에 깨달았다.

역시 하지 말아야 했다!

그녀는 내 조언을 진심으로 수용하며 고마움을 표했지만, 동시에 본인도 많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순간 알 수 있었다. 아, 서운했구나....

에잇, 일찍 알아채고 칭찬했어야 했는데....일 년 전 모습으로만 판단하고 조언한 것이 화근이었다.


몇 년 전 '조충평판(조언, 충고, 평가, 판단)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이 한동안 회자되었다.

정혜신 박사가 책에서 말한 그 내용에 나도 폭풍 공감하며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꾹꾹 눌렀다. 학교의 후배 여교사들이 내 자식 교육에 대한 경험을 듣고 싶다고 해도 웃으며 정중하게 거절했다. 진짜 열심히 사는 후배 샘들에게는 '어깨 툭툭'으로 그녀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줄타기를 잘했는데.... 오늘은 줄에서 떨어졌다.

법륜스님이 조언과 참견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하신 걸 본 적이 있다.

"조언은 내가 말한 후 그게 끝이야. 기대가 없는 거지. 그런데 내 말을 상대방이 수용하지 않을 때 속상하면 그게 참견이야."

이것에 비추어보면 내가 한 말이 조언은 맞지만, 그녀가 묻지도 않았는데 한 건 선배 코스프레였다.


상대방이 물어보기 전에는 절대 조충평판이 나오지 않도록 이를 앙 물자.

날 것의 이 문장을 포스트잇에 써서 노트북 가장자리에 붙이면서 오늘도 나는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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