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자 사랑
베카가 걷기 시작했다.
아직은 뒤뚱뒤뚱.... 넘어질 확률이 발을 뗄 확률보다 높다.
아들이 보내온 동영상 안에서 그 위태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정작 그 아이의 부모들은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벌써 첫걸음마의 경험이 세 번째이다 보니, 염려와 걱정이 1/3로 줄어든 것 같다.
나보다 하나를 더 키우는 배짱이 은연중에 보인다.
할머니의 입장에서는 위험 요소가 눈에 띄니 노심초사이다.
시멘트 바닥에서 하필 첫걸음마를 연습시키다니, 아이고....
넘어지면 무릎 다칠 텐데.... 긴 바지라도 입히든지, 무릎보호대라도 하지....
톡에다 첫걸음마에 대한 찬사와 감동을 한바탕 써 놓고, 위에 언급한 염려를 최대한 참견처럼 보이지 않게 썼다.
신기함과 기특함에 몇 번씩 돌려보다가 아주 반가운 것을 발견했다.
오빠들이 신었던 첫걸음마의 운동화를 손녀도 신은 것이다.
한동안 잊었던 물건을 발견한 기쁨은 그것의 가치를 아는 자만의 감격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첫 손주를 탄생 4개월 만인 6년 전 가을 연휴에 맞춰 딱 일주일의 휴가를 갖고 가서 안았다. 오십 중순에 '할머니'라는 거북한 호칭을 가진 진짜 할머니는 첫 손자를 안는 순간 그 불편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몽실몽실한 그 녀석의 넓적다리에 얼굴을 비비며 촉감을 영구박제하려 애썼다.
삼십 년 전 내 자식을 만질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겨우 일주일'은 시차적응보다 더 먼저 지나갔고, 귀국 후 '고작 일주일'은 하루 종일 아른거리는 그 녀석의 그리움을 부추겼다.
결국 겨울 방학 때 미국행을 계획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기다리는 두 어 달을 아기를 위한 옷과 장난감, 동화책 등을 미친 듯이 사서 쟁여놓았다.
그중 110mm의 저 운동화는 너무 작아서 장난감인지 실제 운동화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귀여웠다.
나도 분명 자식을 키웠는데 그 경험은 삼십 년 전의 기억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저 저 앙증맞은 운동화를 신고 걸음마 연습을 할 첫 손주에 대한 보고픔과 기대만으로 채워졌다.
나의 보고픔과 사랑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공산품인 운동화에 뭔가 할머니의 손길을 넣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리미티드 명품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결국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운동화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한쪽은 돼지, 한쪽은 강아지의 도안을 그려 새틴스티치로 한 땀 한 땀 이어나갔다.
자수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새틴스티치가 가장 기본이면서도 솜씨가 바로 드러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같은 방향으로 공간을 촘촘히 채워 넣는 기본 바늘땀이었기에 더욱 실력차가 도드라진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촘촘하지 않았고 빈틈이 많이 보였다. 완성된 수를 다시 뜯어내고 재도전을 하여 완결했다. 완성된 자수를 남편에게 자랑했으나 예상대로 그는 자수가 삐뚤고 성기다는 지적을 했고, 나는 '실눈 뜨고 보면 괜찮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애초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안고 시작한 일이라 기대는 내려놓고 의도만 찬양해 주길 바랐다.
몇달 뒤, 내 눈에만 명품인 그 운동화는 주인인 손자에게 인도되었다.
정확하게는 주인의 부모에게 전달되었고 나의 노고와 정성보다 더 큰 공치사와 함께 건네졌다.
15개월이 넘어서 첫걸음마를 뗀 신중한 손자의 행보에 실용화되기까지는 그 뒤 일 년이 더 걸렸다.
물론 그 운동화는 둘째 손자도 신었다. 일 년에 한 번 보는 손주들이기에 타이밍 맞춘 직관은 못하였고, 아들의 증언으로만 짐작했다.
그 후 저 운동화는 내 기억 속에서 지워졌는데, 6년이 지난 지금 다시 등장했으니 할머니의 감격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을 만큼 크다.
그때의 내 공치사는 자식들의 귀함을 아는 감수성 앞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감동과 추억으로 바통을 넘겼다.
사족을 빙자한 내 속내를 슬쩍 끼워 넣자면,
이제 더 이상은 저 운동화가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