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조기 사교육 비판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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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커피 한 잔과 함께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체육수업을 바라보는 것이 '연구년제'인 올해의 소소한 기쁨 중 하나이다.

우리 아들들도 저기서 뛰어놀았고, 베란다에서 들어오라고 소리쳐 부른 적도 많았다.

이제는 추억이다. 그래서 그리고 싶었다.




이 그림은 몇 년 전 '교사 연구년제'를 하며 시간상으로 여유가 있던 주중 아침에 그린 그림이다.

주말에나 가능했던 베란다 브런치, 그리고 함께 하는 학교 운동장 감상은 언제나 이런 모습이었다.

운동장은 고요했고, 간간이 동네 주민 몇 분만 걷고 계신 모습이 전부였다.

그러나 주중의 학교 운동장은 달랐다.

아이들의 고함과 함성, 웃음소리가 창문을 열고 보면 아주 왁자지껄하게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커피와 브런치를 즐기다 보면 절로 흐뭇해지고, 옛 추억을 더듬게 된다.

그곳은 공 하나만 있으면 떼로 몰려다니며 너끈히 몇 시간을 소화하는 장소였고, 지금도 단순하고도 명쾌한 축구 논리가 여전히 살아 있는 곳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왜 이렇게 적어?"

창 밖을 보며 무심히 내뱉은 말이다.

내 머릿속의 '한 반'에는 늘 열 명쯤은 더 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은 스무 명 남짓, 출생률 저하로 학급 정원이 줄었다는 이야기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국민학교를 다녔던 시절의 나는 반 번호가 72번이었고, 내 뒤에도 열 명쯤 더 있었으니 지금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항상 좋다.

아가들의 꺄르륵에서 시작하여 하이톤의 초등학생 웃음까지, 그 소리는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그 소리만으로도 하루가 환해지고, 어른들의 굳은 마음마저 풀리게 한다. 언제 들어도 옳고 누구에게나 위로가 된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잘 웃지 않는다.

초등학교 앞 건널목에서 많은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모두 학원 가방을 멘 채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어디 가니? 학원 가나 보네."

어쩌다 말을 시켜도 이상한 아줌마를 보는 시선으로 쳐다보거나, 단답형 "네"로 끝난다.

말을 시킨 이상한 아줌마인 나는 머쓱하지만 그래도 또 도전한다.

도서관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초등생들은 조금 낫다.

"뭔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 놀아. 놀아야지. 초등생은 놀아야지."

"학원 숙제해야 돼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한테 말 좀 해줘요."라며 웃는다.

가끔은 비장한 초등학생도 만난다.

"지금부터 열심히 해야 서울대 갈 수 있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이십오 년 전, 우리 아들들도 저 운동장에서 뛰놀았다. 그들은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재미교포와 결혼하여 아이 셋을 둔 큰아들은 미국에서 넉넉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그다지 없다.

또래 자녀를 둔 친구들을 통해 들은 한국 조기 사교육의 실태에 완전히 정이 떨어졌다고 했다.


얼마 전 시청한 <추적 60분>의 ‘7세 고시’ 편은 충격을 넘어 경악 그 자체였다.
‘7세 고시’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유명 대형 영어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치르는 입학시험을 말한다. 부모들은 영어유치원 입학을 위해 임신 중부터 대기 신청을 하고, 이후 학원 입학시험을 통과시키기 위해 아이를 몰아붙인다. 문제는 시험의 수준이다. 한글조차 제대로 떼지 못한 5~6세 아이들에게 대학수능에 버금가는 영어 논술 문제를 풀게 하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는 이보다 더 앞당겨진 ‘4세 고시’까지 등장했다고 하니, 그저 ‘미쳤다’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다.

그 아이들은 당연히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 어른들의 탐욕이 아이들의 삶을 망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9월 15일 '영유아 사교육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또한 유아 사교육을 제한하는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36개월 미만 영유아에게 영어·수학 등 학교 교과 교습을 금지하고, 36개월 이상 미취학 아동은 하루 40분으로 교습 시간을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것이 정상화되고 있는 요즘 그나마 다행인 소식을 발견했다.

문제는 국가에서 아무리 괜찮은 정책을 내놔도 그것보다 한 수 위인 학원들의 꼼수와 변칙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학원의 꼼수와 변칙이 내 아이만 뒤처질까 하는 부모의 불안과 만날 때 그들의 시너지는 불패이다. 부모의 불안이야말로 조기 사교육 시장을 떠받치는 가장 화력 높은 연료이다.


조기 사교육은 본질적으로 '교육'이 아니라 '폭력'이다.

발달 단계조차 무시한 채 아이들은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배움의 즐거움은커녕 학습 혐오만 남는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어가 아니라 놀고 부대끼며 스스로 세상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호기심과 창의력을 시험지 밑으로 눌려 갇히게 하지 말자.


우리 아이들은 밝게 자랄 권리가 있다.

웃을 권리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 제31조>를 소환하며 '정신 차려! 부모들'을 외친다.

1. 당사국은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한다.

2. 당사국은 문화적·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고 촉진하며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 활동을 위한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의 제공을 장려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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