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은 삶의 원동력이다

정유정 <영원한 천국> 독후감

by 게을러영
영원한 천국.jpg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고, 아무도 죽지 않는 세계, 영원한 천국에 산다면......

인간은 과연 평화로워질까?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

정유정 작가의 <영원한 천국>을 밤을 꼴딱 새우며 읽었다.

그것이 정유정 소설의 힘이다.




책을 잡기 전에 고민했어야 했다.

정유정 작가의 필력은 최고 출력의 흡인력을 가진 다이슨 청소기이다.

잘못 잡으면 밤을 새울 각오를 해야 한다.

이미 <7년의 밤>, <종의 기원>, <28>, <진이, 지니>, <완전한 행복>을 읽으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불문율이다.


저녁 6시에 이 책을 왜 잡았을까?

읽을 책을 몇 권씩 대출하여 볼 때, 제일 읽기 싫거나 어려운 것부터 시작하는 습관상 이 책은 계속 미루어졌다. 그러다 반납일을 하루 앞두고 손에 잡아야 했음은 빼박의 이유이다.

결국 새벽 5시까지 밤을 꼴딱 새우며 읽었다.

중간에 '자야 해. 늙은 네 몸의 리듬을 깨면 안 돼'를 몇 번이나 외치며 책을 놓았지만, 이미 잠기운은 달아났고, 애써 자려할수록 '다 읽고 자자.'의 합리적 유혹이 결국 완독을 하게 했다.


<완전한 행복> 이후 만 3년 만인 2024년 가을에 출간된 <영원한 천국>은 크게 '롤라'라는 가상 세계와 '삼애원'이라는 현실 세계로 나뉜다.


'롤라'는 '롤라 공용 극장'의 줄임말로 거대 네트워크이자 빅 데이터 통합 플랫폼이다. 게임, 커뮤니티 등이 무한 생성되고 소비되는 가상 세계로 맘에 드는 것을 선택하면 된다.

'룰라'의 세계로 입성하려면 스마트폰의 유심칩을 통해 자동 접속되는데 그 안에 성격, 취향, 건강 등 주인의 일상이 그대로 업로드되어 가상의 삶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살다가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 삶이 좋았다면 반복도 가능하다. 반복에 따른 스포일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삶이 재시작될 때 모든 기억은 리셋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삶이 맘에 안 들었다면 다른 콘텐츠를 찾으면 된다. 꼭 인간의 모습으로 살 필요도 없다. 동식물도 가능하다.

매사가 그렇듯 룰라의 정형성이 싫은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은 '드림 시어터'라는 개별 맞춤형 설계의 가상 세계를 구축하여 살면 된다.

'롤라'가 남이 지은 아파트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드림시어터'는 내가 설계하여 지은 단독주택이다.


'삼애원'은 겉으로 보기에는 노숙자 재활 시설이었지만 실상은 '롤라'의 입성을 준비하는 곳이었다.

가상 세계를 인지하고 계획적으로 들어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경계였고, 롤라를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인 유심칩 쟁탈로 긴장과 갈등이 유발되는 중심 장소이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롤라와 삼애원을 교차로 보여주며 그 안에서 주인공인 해상, 경주, 제이와 주변 인물들의 갈등과 해소가 반복되다 해상과 경주가 롤라의 세계에 결국 진입하는 얘기이다. 거기서 경주가 구축하고자 하는 드림시어터의 설계를 해상이 맡게 된다. 해상이 설계에 도움이 되고자 경주의 인생 스토리를 듣는 과정에서 그녀는 기억하지 못하는 롤라 이전 자신의 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드림시어터 구축 과정의 갈등이 나타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독자들의 예상을 뒤집는 반전으로 글은 마무리된다.


가상 세계나 AI에 관한 내용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통해 영화, 소설, 웹툰 등 다양하게 선보였다.

가상 세계라는 단어조차 없었던 시기에 영화 '매트릭스'는 대중에게 그것을 한 큐에 각인시키며 많은 설왕설래를 이끌었다. 그게 벌써 25년 전 이야기이다. 그때만 해도 그건 그냥 상상이었다. 지금의 상용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제는 데이터 축적이 핵심 동인이 되어 기업의 흥망성쇠까지 관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영향은 개인의 일상에도 보편화되었다. 검색을 통해 하나씩 확인하지 않고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모든 자료를 한 번에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시대이다.

결국 가상 세계의 진입과 도래는 너무나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개인의 격차, 세대의 격차 등 새로운 차별이 생겨나고 있다.

호모데니아에도 언급되었듯이 '데이터교(敎)'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 혼란스러웠다.

모두 평등하고, 뭐든 할 수 있고, 갈등이 없는 세계를 평소 염원해 왔지만, 그런 세상은 그냥 상상에만 존재했을 때 가치가 있다. 그 상상의 디폴트값은 생로병사가 기정사실이었기에 그것이 파괴된 세상은 논외였다.

과연 그 공식이 깨지고 선택할 수 있다면 '영원’과 ‘천국’이 과연 축복일까?


나는 예전엔 꽃다발 선물을 아깝다고 생각했다.

일주일도 안 되는 생명의 값을 치르기보다 꽃 화분으로 오래 즐기는 것이 가성비 좋은 소비라고 여겼다.

어느 날, 꽃다발을 꼭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다. 포장하는 동안 주인의 말이 평소 그 생각을 깨지게 하였다.

'꽃다발의 아름다움은 열흘도 못 가는 생명력 때문일 거예요. 그 유한함이 아름다운 거죠.'

유한함에 드는 비용......

그 유한함이 전제되어 있어서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삶이 소중한 건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이라는 카프카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작가 정유정은 유발하라리의 <호모데우스>를 읽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데우스가 되어 영원한 천국에 살더라도 인간은 결국 자기 문제를 끌어안고 끙끙대는 존재라는 것, 욕망과 추구는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마지막까지 간직할 본성이라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견디고 싸우고 맞서서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욕망과 추구의 기질을 작가는 '야성'이라고 명했다.


작가의 말에 용기를 얻는다.

내게 글 쓰는 과정은 바로 야성이 발현되는 시점이다.

지적 부족함과 싸우고,

단어와 문장의 결핍에 맞서서 이겨내고,

그 못난 과정의 괴로움을 견뎌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여 끝내 글 하나를 완성해 내는 욕망이 나의 '야성'이다.

영원하지 않고,

영원할 수 있고,

두 전제가 모두 참인 나의 '천국'이다.

영원과 찰나, 천국과 지옥은 '뫼비우스 띠'처럼 구분 수 없는 끝없는 순환이다.


논리적인 얼개로 상상을 그럴듯하게 엮는 기술과 빈틈이 없는 서술로 독자의 쫄깃함이 극대화하게 하는 정유정의 소설은 참 재미있다.

오백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의 소설을 한 번에 읽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정유정의 소설은 가능하다.

그것이 작가 정유정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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