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가 개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단상
기(起)는 이랬다.
S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Y에게 '창작 글쓰기 아카데미'를 추천해 주었다.
그 수업을 통해 S의 지인인 K가 등단했다는 것이다.
"진짜 딱 한 학기 다녔대요. 근데 정말 족집게로 너무 잘 가르친대요. 아니라니까요.... 진짜 생초보 맞고요,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고 좋아하지도 않았대요.... 첨삭 지도를 기가 막히게 해준대요."
S의 추천은 병원에서도 포기한 불치병 환자가 대체의학으로 완치했다는 것처럼 Y를 흥미진진하게 했다.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이미 내공이 있었겠지요. 99도였는데 1도의 지도로 끓은 거겠지요."
"백번 양보해서 맞다고 칩시다. 그 1도 올려서 끓게 만드는 게 탁월한 지도력 아니겠어요?"
Y의 말에 S는 정색하고 받아치며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약간 흔들렸지만 다른 일로 바빴던 Y는 그 뒤 잊고 지냈다.
"아직 신청 안 하셨어요? 이 수업 추천했던 K가 곧 마감될 거 같다고 얼른 신청하라고 또 연락이 왔어요. 그분이 엄청 챙기시네."
좀 시일이 지난 후 다시 S에게 전화를 받은 Y는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일단 신청을 했다.
승(承)은 이랬다.
며칠 후 모르는 카톡방에 Y가 초대되었다.
'00대 창작 글쓰기 아카데미'란 이름의 톡방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었다.
겨우 한 나절이나 지났을까?
톡방에는 삼십여 개가 넘는 톡이 계속 쌓였고 그제야 Y는 '이거 뭐지?'의 당황과 불쾌감이 스쳤다.
개인 정보인 전화번호가 본인의 허락 없이 제공되고, 신입회원들의 양해나 허락 없이 톡방에 초대하고, 전후 상황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첫 수업 후 점심 식사까지 그냥 공지되는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느낌이 안 좋았다.
신청한 프로그램에서 톡방을 만들 경우 링크를 보내 본인에게 참여의 선택권을 주는 게 요즘의 추세인데 이렇게 훅 들어와서 Y의 뜻과 상관없이 진행되는 게 황당했다.
수업보다는 이렇게 친목이 우선되는 경우가 꽤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게 본인한테 해당할 줄은 Y는 미처 몰랐다.
그 후 아주 활발하게 뭔가가 계속 올라오고, '감동입니다.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가 복붙(복사와 붙여넣기)되고 있었다.
Y는 수업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렇게 친목으로 다져지는 클래스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건 반골 성향이 강한 Y가 싫어하는 모습이다.
확실한 이유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눙치기가 이해되지 않았고 쉽게 넘어가기 어려웠다.
Y는 이틀을 고민하다 결국 수강취소를 함과 동시에 그 톡방을 나왔다.
전(轉)은 이랬다.
Y에게 모르는 전화가 왔다.
바로 S의 지인이자 이 수업을 강력 추천했던 K의 전화였다.
약간의 인사가 끝난 뒤 본론이 나왔다. 왜 톡방을 나갔냐는 K의 질문에 Y는 사정이 생겨서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에둘렀다.
Y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K는 이 수업이 얼마나 좋은지, 선생님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신이 이 수업으로 얼마나 향상되었는지 등을 한참 동안 설명했다.
웃으며 듣던 Y에게 K는 갑자기 물었다. 톡방에 묻지도 않고 초대한 것이 기분 나쁘지 않았는지....
정곡을 찔린 Y는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렸지만 재차 캐묻는 K에게 그것도 수업 취소의 원인 중 하나였다고 실토했다.
이미 그 톡방은 기존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새 수강생들의 동의 없이 초청되어 진행된 점은 분명히 잘못이라고 K는 말했다. 단지 수강생들이 연세가 많은 어르신 위주이고, 일 년 동안 두 명이나 등단한 점으로 분위기가 상승되어 그런 세심함을 챙기지 못한 것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더불어 그것 때문에 좋은 수업을 놓치는 우를 절대 범해선 안 된다는 점도 재차 강조했다.
남 신경 쓰지 않는 요즘에 이렇게 전화까지 해 준 K의 친절에 Y는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며 통화를 마쳤다.
이제 화살은 다시 Y에게 돌아왔다.
그 무례함이 Y의 오해가 아님이 증명되자 일단 마음은 좀 풀렸으나 여전히 미결의 문제가 있었다.
하여튼 첫 수업을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결정을 유보했다.
첫 수업 2시간 중 첫 시간은 오리엔테이션이었고, 두 번째 시간은 '00 문학회'의 회장단 선출과 자기소개였다.
이 수업에 신청한 것만으로 문학회에 가입된다는 전직 회장의 고지도 낯설었다.
Y는 수강만 할 뿐인데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문학 회원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장단을 선출하고 나자,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기존 회원은 앉아서 하고 신규 회원만 앞으로 나와서 하라고 했다.
허걱....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총무라는 분이 양해 없이 앞으로 나온 신규 수강생들의 사진을 찍었다. 왜 찍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Y는 사진은 찍지 말아 달라고 정중하게 거절하고 간단하게 소개하고 들어왔다.
수업이 끝나자,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공지에 있던 것처럼 점심을 먹으러 갔고, Y는 선약이 있다는 하얀 거짓말을 하고는 그 자리를 피했다.
결(結)은 이랬다.
Y는 머리가 아팠다.
선택의 기준이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수업 분위기가 최대 고민거리가 되었다.
석 달 반을 그들과 함께 수업하며 상황을 그냥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은 전혀 악의가 없었고 친절했고 다정했다.
친절함이 부담감으로, 악의 없는 개입과 급습이 당황과 무례로 인식되는 건 Y의 입장이었다.
예민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돈 받고 할 때야 조직의 리듬을 따랐지만, 돈 내고 할 때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은가?
K에게 어떻게 잘 말해서 이해시킬 수 있을지? 이해시키는 데 힘을 쏟을 필요가 있을지?
오버싱커 (over thinker)인 Y의 쓸데없는 고민이 또 시작되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있다.
아직은 열린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