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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스위스는 스위스가 아니었다.

여행 1: 동유럽 여행기

by 게을러영

살면서 나에게 오롯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게 얼마만이던가?

교사로, 엄마로, 사회적 관계 속에 여러 인연과 책임 안에서 나라는 주체는 사라지고, 잃어버리고, 잊고... 그렇고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3월의 어느 날, 한밤중에 찾아온 객체만 존재하는 나에 대한 처절한 저항은 밤낮으로 며칠간 계속되었다.

남자만 셋인 집을 열흘 넘게 비워야 한다는 어줍고 알량한 엄마와 주부의 양심은 왜 꼭 이럴 때 출몰하는지!

여태껏 치열하게 살아온 나에 대한 선물이라며 이 여행을 그렇게 포장하고 명분을 주었다.


마침내 7월 마지막 주, 드디어 대망의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장시간의 비행에 대한 준비도 철저히 하였다. 요통을 줄이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계속하였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수면제까지 처방받아 놓았다. 이미 갱년기가 시작된 나는 수면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단순한 명제를 굳건히 믿기에 서양미술사, 서양음악사에 대한 동영상도 열심히 시청하였고, 관련 책도 여러 권 보았다. 그러나 나이로 대변되는 망각의 깊이와 빈도는 계속 나를 괴롭혔고 봐도 봐도 생소한 여러 지명들과 지식들은 부팅 때마다 다시 저장해야 하는 하드보안관속의 불완전한 활자이었다.

여하튼 나는 떠났고 14박 15일의 일정 속에서 쉬고 싶다는 육체적 욕구와 더 보고 싶다는 정신적 욕구의 싸움을 중재하며 강약조절을 하면서 그 찬란한 2주를 흠뻑 향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정리하자면,


첫 번째는 무엇보다도 박물관과 미술관 기행이다. 사실 동유럽 기행은 미술관 기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것들을 뺀다면 '단팥 빠진 찐빵'인 격이다. 베를린의 박물관섬에서 본 여러 유물 가운데 ‘페르가몬 박물관’의 계단과 벽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문화 보존을 가장하여 약탈을 자행한 선조들의 장물들을 버젓이 전시해 놓고도 당당한 그들의 이중적인 모습에 '큰 도둑은 도둑 취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며 씁쓸했다.

그렇지만 베르그루엔 미술관에서 본 피카소와 마티스의 여러 작품과 프라하 국립미술관에서 본 '우는 신부'는 덜 떨어진 인간의 잔인하고도 세밀한 내면을 어쩜 그렇게도 리얼하게도 표현했는지 한동안 넋을 놓고 보았고, 비엔나 레오폴트 미술관에서 구스타포 클림프의 그 유명한 '키스'를 실제로 보는 감동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웠다. 사진과 화보로 그렇게 많이 ‘키스’를 감상했지만 그림의 규모가 그렇게 큰지, 황금색의 오묘한 광채가 그렇게 빛나는지, 남자의 목덜미를 움켜 준 여자의 손끝의 미묘한 떨림을 흠뻑 공감하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 밖에도 말로만 듣던 고딕,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양식들의 대표적 건물들과 궁전을 보면서 돌을 나무 다루듯 조각한 그 섬세함과 노력에 감탄하면서도 한편 그것이 몇몇의 기쁨을 위해 목적도 모르게 착출 되어 단순노동으로 평생을 바쳤던 평민과 노예들의 땀과 노동이라 여겨지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반 헤메센 <우는 신부>

두 번째는 가히 야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세계 3대 야경이라는 드레스덴, 프라하,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요번에 모두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고연한 옛 성의 은은한 야경은 싸구려 자본주의가 만든 서울과 상하이의 현대적 화려한 야경과는 확실히 클래스가 달랐다. 특히 여행의 말미 부다페스트에서의 3시간의 취침을 감수하고 야경과 일출을 동시에 본 여운은 여지껏 묵직하게 남아 있다.


프라하 야경
드레스덴 야경
부다페스트 야경

세 번째는 무엇보다 시민을 제일 앞에 두는 동유럽의 선진 정치이다. 부다페스트 슈퍼마켓에서 충격 먹은 일화 한 토막이 있다. 생수를 사려했는데 0.5ml는 13.5pt(한화675원), 1.5ml는 8.9pt (한화445원)이였다. 몇 번을 확인해도 그랬다. 그리고 곧 그 이상한 계산법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1.5ml는 면세였다. 그 정도 크기의 물을 몇 병씩 사는 건 실생활을 하는 서민이었기에 면세이고 0.5ml는 관광객들이 사 먹기에 세금을 매긴다고 한다. 체코, 헝가리 모두 자국민은 버스, 트램, 메트로 모두 공짜다. 외국인들만 매표해서 타야 한다. 그 서민 위주의 정치가 진짜 부러웠다. 우리도 그래야만 한다. 깨어 있어야 하고 잘 뽑아서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사람이다. 존중받을 때 비로소 사람이다. 비인의 웨이트리스는 영어를 떠듬거리는 우리를 완전 무시하였다. 그런 대접에도 팁을 줘야 할지 말지 일행과 설왕설래하면서 기분을 상한 경험이 있다. 반면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전혀 영어를 못하지만 이방인에게 길을 설명하기 위해 같이 걸어가 주기도 하였다. 이 경우 나라면 어땠을까? 易地思之하는 기회가 잦았다.



누구나 공감하는 '百聞不如一見' 그렇게 입에 붙지 않던 지명들, 서양 역사에 결코 빠질 수 없는 왕국과 왕들의 이름들이 이니셜조차 생각나지 않았는데 갔다 오니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한 토막, 여행 전 ‘어디 어디 가냐?’는 지인들의 물음에 나는 자연스럽게 스위스도 포함해서 말했다. 왜냐면 가는 도시 중에 ‘작센스위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작은 스위스'란 뜻으로 드레스덴에서 프라하로 가는 도중에 들른 알프스 산맥의 한 줄기인 소도시로써 결국 독일 영토였다. 얼마나 황당했던지!

또 하나 '체스키크롬로프'도 왜 그렇게 안 외워지던지? 그러나 셔터 누르는 곳이 바로 엽서였던 그곳의 아름다운 정경은 어디가 뷰 포인트인지 머릿 속에 그대로 입력될 만큼 이제 내 기억 속의 도시가 되었다.

다시 일상이다. 아이들과 매일매일 일희일비하면서 또다시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이제 동유럽은 추억이다. 그 추억은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고, 굽이굽이 생각날 때마다 흐뭇함과 스토리를 동반할 것이다.

2014년 여름, 내 오십에 대한 선물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부다페스트 일출

#여행 #동유럽 #박물관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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