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놀이방에서 원가족까지

가족 개념에 대한 소고

by 게을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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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불편해졌다.

사실 결혼하고 나서는 시댁의 관계에 대한 부담과 노동의 고단으로 힘들고 싫은 날 중 하나였지만, 아이들이 둘 다 외국으로 간 뒤에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철저하게 느끼는 날이 되었다.

귀갓길, 한적한 장소에 주차된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같이 눈에 확 띄게 커스터마이징(costomizing)을 한 이쁜 캠핑카에 눈길을 빼앗겼다.

누구나의 로망인 저 이쁜 캠핑카를 소유한 그 누구는 과연 행복할까?

타인의 부러운 시선과 이용하는 횟수보다 더한 운용에 대한 부담감으로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어떤 소유든 부담과 책임이 따르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을 알게 되는 나이가 되어 편안하다.



산성 근처의 공용 주차장은 언제부터인가 캠핑카들의 전시 공간이 되었다. 각양각색의 캠핑카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는데, 그중 군계일학은 바로 저 차였다.

반추해 보면, 우리에게도 캠핑카와 비슷한 차가 있었다.

지금은 단종된 산타모의 2열 등받이를 완전히 눕혀 3열과 함께 작은 방을 만들고 에어쿠션까지 동반하여 움직이는 놀이방을 만들어 뽕을 빼게 전국을 누볐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유아 카시트 법규도 없던 때라 가능했다. 움직이는 작은 방에 동화책, 로봇, 베개와 모포까지 갖추어 교통체증을 견뎠다. 놀다 지친 애들을 재우고 나서 혼자 식탁에 앉아 '언제 크나?'를 읊조리며 캔맥주를 홀짝이던 모습은 이제 내 젊은 추억 속 한 페이지였다.

아들들이 대학 이후 각자의 길을 찾아 독립한 후, 한동안 자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둘 다 외국으로 떠나 일 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날들이 이어지자, 캔맥주의 홀짝거림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들과 손주에 대한 그리움이 자유로움보다 앞서는 날은 바로 그들의 생일과 명절이었다.


가족!

내게 가족의 개념은 부모 세대가 물려준 핏줄의 본능, 모태부터 새겨진 숙명 같았다.

자식이 아프거나 한계 상황에 놓였을 때, 제 새끼를 보호하려는 동물적 육감이 이성을 앞섰던 때가 있었다. 그런 원초적 애착은 전 세대부터 의심 없이 대물림된 것이기에 그것이 어미의 바른 모습인 줄 알았다.


그런 내게 가족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꾼,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다.

이 년 전 미국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할 때였다. 당시 임신 중이던 며느리는 항공사의 배려로 우선 탑승 기회를 얻었는데 '가족도 가능하다.' 말에 우리 부부와 아들네 네 식구는 당연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항공사 직원이 와서 아들에게 뭐라고 했고, 아들은 곧이어 계면쩍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엄마, 음..... 어..... 아버지와 엄마는 뒤에 가셔서 줄을 서야 한대요. 먼저 탑승할 수 있는 '가족'은 우리 넷뿐이라고 하네요. 저희가 먼저 들어가서 자리를 맡아 놓을게요."

아들은 자리를 미리 확보하지 않는 조건으로 좀 더 저렴한 티켓팅을 해 놓은 상태였다. 당시 허리가 안 좋던 나는 혹시 3열의 좌석 중 가운데 자리에 낙찰되어 옴짝달싹 못 하고 6시간을 견뎌야 할까 봐 불안했다. 결국 우리 부부는 티켓 수준만큼 맨 뒤로 밀려 탑승해야 했다. 다행히 아들이 자기네 자리 앞으로 우리 자리를 확보해 줘서 편안한 여행이 되었지만, 이 사건은 귀국한 후에도 꽤 오랫동안 내 뇌리에 남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가족'에 내가 포함되지 않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결론은 하나였다.

'내가 생각하는 가족'과 '내 현재의 상태에 맞는 가족'의 개념은 달랐다.


원가족(原家族) -개인이 태어나 자라난 본래의 가족, 보통 부모와 형제자매로 이루어진 가족을 말하며, 결혼하여 형성한 새로운 가족(현재 가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된다.


이제 나는 아들의 가족이 아니라 원가족(原家族)이 되었다.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 이상 '내 새끼'가 아닌 아들도, 아들에게 '원가족'이 된 나도, 그 세밀한 기준을 인정해야 했다.

비록 나와 내 부모 세대는 이런 개념도, 나눌 용기도 없었지만, 그 고루함을 간직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지 못하면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악에는 소원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직시해야 했다. 우리 전 세대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시되었던 것들이 우리 세대에서는 자식과 상의하며 조율해야 하는 영역이 되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효도 못 받는 첫 세대란 의미인 '마처 세대'의 딜레마이자 과제가 되었다.

미국에 다녀올 때마다 하나씩 숙제를 안고 오고, 그 숙제를 풀어야 다음번 방문이 훨씬 수월한 것을 안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나는 항상 내 안의 억울함과 고루함을 벗고 자식의 독립된 삶을 온전히 응원할 수 있도록 존중과 경청의 자세를 조율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캔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다.

'언제 크냐?' 대신 '어떻게 함께 크냐'를 고민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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