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단절과 회복의 시도 사이의 예의
성격이 차분한 대학 후배가 있다.
그 아이는 나를 좋아하고 따랐다.
그녀의 입에서는 항상 교과서적인 얘기만 나왔고, '고운 말 바른말 쓰기' 캠페인에 나오는 바름을 장착한 그런 느낌이었다.
대학 때 그 애 앞에 서면, 때 묻은 느낌이 들어 주눅이 든 적이 꽤 되었다. 대학생이라면 흔히 쓰는 비속어보다도 약한 단어에서도 그녀의 눈동자는 동그래졌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했던 내가 마치 속물을 넘어 불량 학생이 된 것 같았다.
'이름대로 산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그녀의 이름에는 '貞(고를 정)'이 들어 있는데, 이름답게 곧게, 바르게 자랐음에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직장과 육아 사이에서 피땀을 쏟던 삼십 대 시절, 그녀는 유학을 갔고 한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었다. 서로 사는 게 바빠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한 번꼴로 만났고,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내게 없는 그 순수함이 대학 때는 그렇게 부러웠는데 50대에는 부담이 된 사건이 생겼다.
함께 떠난 여행에서 그 부담감에 결국 싫은 소리가 내쪽에서 먼저 나왔고, 여행을 마치고 그녀에게 장문의 문자가 왔으나 그때는 내가 밋밋했다. 한 이삼 년 데면데면 지내다가 안부를 먼저 물은 쪽은 나였다. 그 냉랭했음을 반성하고 진심의 사과를 했으나 요번에는 그녀가 덤덤했다. 그 후 거의 연락이 끊겼다. 그러면서 또 몇 년이 흘렀다.
서로에게 물을 흘려보내지 않았던 그 물길은 바짝 말라 '물길이 있었나?' 싶었다.
다시 한번 물길을 열고 싶어서 나는 용기 내어 그녀에게 전화했다.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고, 전화한 이유를 짧게 보냈다.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한 거야. 잘 지내니? 네가 편할 때 언제든지 전화 줘.'라고.
한참 뒤 전화 대신 메시지가 왔고, 바빠서 전화를 못 받았다며 잘 지내라는 평범한 인사로 끝났다.
요번에도 물길은 시원하게 트지 않았다.
그리고 추석 전날 그녀에게서 장문의 카톡이 왔다.
'언니, 참으로 뜨겁고 힘든 여름을 보냈어.'로 시작된 그녀의 글은 떡 장인이 만들었다고 할 만큼 훌륭한 솜씨로 빚은 송편을 찍은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였다.
겉옷마다 위치추적기를 달아야 할 만큼 아버지의 치매가 너무 심해진 것에 대한 회한과 고통이 푹 담겨 있었고, 정성껏 송편을 빚어 아버지 찾는 데 도움을 준 이웃께 선물함으로써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대신한다는 진심이 녹아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그녀의 성품대로 수용과 감사의 기도로 마침표를 찍었다.
전화하고 싶었지만, 자신의 가슴속 깊이에 있는 울음까지 터질까 봐 못 했다는 얘기도 함께였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아버지의 겉옷에 위치추적기를 하나씩 달면서 얼마나 속상하고 불가항력을 느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지만, 나 역시 파킨슨병으로 사그라지는 아버지를 볼 때의 심정으로 그녀를 공감했다.
또 '전화하면 울음이 터질까 봐' 못했다는 후배의 고백에, 나는 서운함과 자존심을 내려놓았다.
편할 때 전화달라는 내 말에 연락이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고,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이젠 병사(病死)에 더 가까운 아버지를 둔 우리의 모습에 연대감과 위로를 보냈다.
그런데 저 송편 사진이 낯설지 않았다.
며칠 전 이미 본 것이다. 그녀와 같이 속해있는 다른 대화방에서.
그녀가 빚었다는 송편에 모두 놀라며 '너무 이쁘다. 떡집을 내도 되겠다. 장인의 솜씨다.'며 칭찬을 했고, 나도 그 조류에 숟가락을 얹었다.
여유있는 사모님이 자신의 솜씨를 자랑하는 줄만 알았지, 수면 밑에 백조의 치열한 안간힘이 있을 줄 그때는 진짜 몰랐다. 그녀는 건드리면 톡 하고 터질지도 모르는 슬픔을 우걱우걱 삼키며 상황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멋진 송편 사진을 올린 대화방 사람들의 친교는 그 보이는 아름다움만 칭찬하면 되는 관계이다.
수면 아래의 처절한 속내를 보인 나와는 대화에서는, 그 이면의 아픔과 간절함을 더 봐야 한다.
'이십 대의 곧음'이 '오십 대의 맷집'으로 승화한 그러나 여전히 그 간극을 힘들어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조만간 그녀에게 따뜻한 밥을 사야겠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껴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이 글을 쓰는 지금, 라디오에서는 흘러나오는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는 왠지 우연이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