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렸다'를 '다르다'로 인식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일상의 고찰 10 : 대인관계에서 상처를 받지 않고 서로 윈윈 하는 방법

by 게을러영

지난 4월쯤의 얘기이다.

친한 지인과 함께 윤석열 탄핵 집회에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집회 시간 두어 시간 전에 너무 피곤해서 못 갈 것 같다는 연락이 왔다. 불과 몇 달 전까지 현직 교사의 피곤함을 익히 아는 나는 푹 쉬라는 말과 함께 '샘 몫까지 힘차게 구호 외칠게요~'라며 가벼운 톤으로 응수했다.

혼자서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큼 뻘쭘한 것도 없지만 자주 나가다 보니 그것도 꽤 익숙해졌다.


집회를 마치고 들어와 늦은 저녁을 먹는데, 그녀와 내가 같이 속해 있는 대화방에 그녀가 찍은 벚꽃 야행 사진이 올라왔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꽃 반 사람 반~~ㅋㅋ' 함께.

순간 불쾌감, 좀 더 나아가 분노까지 치밀어 올랐다.

원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피곤하여 집회에 불참하는 것까지는 이해된다. 그러나 불참 대신 개인적인 즐거움은 추구한다? 이 부분은 좀 서운하다. 탄핵 집회에 거의 매일 참석했던 나를 지인들은 '정치 고관여층'이라고 했지만, 정의를 다시 세우느냐 마느냐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 국가 존망의 기로라 여겼다. 주변의 지인들도 모두 이 생각에는 동의하나 실천은 또 다른 문제이고 여기서 각자의 주저함이 보인다. 각자의 상황이 다르니까 그 부분도 이해했다. 그렇지만 '집회에 참석 못 하는 피곤함이 벚꽃 구경은 간다?' 요 부분은 쉽사리 동의되지 않았다. 애초 취소 가능성이 높은 선택적 약속이었을까? 신뢰도 저하와 실망은 남는다.


둘째는, 백번 양보하여 약속을 취소하고 개인적인 활동을 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혼자 집회에 다녀온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필 같은 시간에 벚꽃 사진을 내가 있는 단체 대화방에 공유한 것은 도대체 뭔 의도인가? 오직 자신의 즐거움을 빨리 공유하고 싶은 단순함이었을까? 사실 이 추론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전혀 꼼꼼하지도 세심하지도 않은 그녀의 성격상, 대화방에 올리면서 내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을 확률이 높다. 단순히 자신의 즐거움을 빨리 공유하고 싶은 마음만 앞섰을 것이다.

그녀의 단순함이 내게는 상처가 되었다. 내 상처의 근본은 무시당한 언짢음과 기대 불일치로 인한 상실감이었다. 생각보다 꽤 오래갔다. 계속 그런 상태로 살 수는 없으니, 내 평정심을 회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세상엔 치밀하지 못하여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임기응변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너는 남들보다 훨씬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억한다. 너의 그 예민함이 남들에겐 불편할 수 있다. 너한테만 사용하자. 원칙은 큰 일에만 적용하자. 작은 일은 연민으로 퉁치고.'


그 대화방 구성원들이 모두 벚꽃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그 사진에 '좋아요'를 표할 때, 아무 반응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만 아는 소심한 복수를 표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녀와는 여전히 잘 지낸다.

그때의 서운함은 사라진채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머리로는 충분히 안다.

그러나 처음 드는 감정은 '네가 틀렸다.'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감정은 일단은 서운함, 이단은 분노, 삼단은 상처이다.

'다름'을 가슴으로까지 완전하게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사나흘쯤 걸린다. 물론 사안에 따라 가감은 자연스럽다.

마음속에서 똬리를 틀고 하루이틀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점점 사그라지면서 삼사일쯤되면 식는다. 처음부터 자리 잡지 않으면 'BEST'이지만 그건 무리이다. 요 정도의 삐짐은 인정해 주자. 그리고 기다리자.

일찍 데일리 카네기 선생도 말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닫게 하는 최고의 주문은, '당신이 틀렸다!'라고.


그다음 필수 불가결 요소는 '기대를 버리자!'이다.

네 일에 있어 가장 기쁘고, 가장 슬프고, 가장 중요하고, 가장 힘든 건 바로 너뿐이다.

남은 내가 아니다. 괜히 나만큼 기뻐해 주지 않고, 슬퍼해 주지 않고,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힘듦을 공감하지 않는다고 조금도 서운해하지 말자.

너도 남한테 그러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망천자 작태수(望天子 作太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