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26 : 박구용 교수 제주 철학원정대 참가기 1
1.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어느 표지의 책으로 읽으셨나요?
왼쪽은 초판의 표지로써 누구나 다 아는 눈의 결정을 표현한 것이다.
책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알겠지만 이 소설의 주된 소재는 눈이다.
아래 인용한 구절은 4.3 당시 열 살 남짓한 주인공 인선의 엄마 정심이, 몇 살 더 먹은 언니와 함께 학살당한 가족들의 주검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삶과 죽음이 맞닿는 순간, 생명에서 사물로 전환되는 경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냉정한 현실 앞에서 인생의 허무와 먹먹함이 함께 서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의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로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며 확인을 했대.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네가 잘 보고 얘기해 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대.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 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2.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이 소설의 표지는 오른쪽으로 바뀌었다.
아랫부분은 파도가 치는 바닷가인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윗부분의 저 하얀 것의 정체가 도저히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거대한 눈 암벽이나 빙하의 단면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짐작만 했다.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갈 때 눈 쌓인 건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부분도 있고, 초판의 표지(왼쪽)의 눈을 가장 작은 단위로 시각화했다면, 오른쪽 표지는 눈의 가장 거대한 단위를 표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이었다.
이 의문은 '제주 4.3과 한강 작가에 대한 고찰'을 주제로 한 박구용 교수와 함께 한 철학원정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제주문학관 김순이 명예관장님의 말씀 중 자연스럽게 등장한 소지(素紙), 즉 흰 종이에 대한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제주의 여자들은 소지(素紙)를 가슴에 품고, 자신들의 염원이 소지 속에 스며들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가슴에 품은 소지를 마을마다 있는 본향당(本鄕堂)이라고 불리는 신당 앞의 퐁낭(팽나무의 제주 방언)에 걸어 놓은 후 물질을 하러 나가면, 할망(할머니) 신이 와서 그 소지의 간절함을 읽고 그녀들의 한을 풀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었다. 본향당은 제주 여인들에게 영혼의 힐링센터였던 셈이다.
구구절절한 언어보다 이 묵언의 행위가 훨씬 직관적이고 감각적이며 가슴과 가슴이 직접 닿는 원초적 교감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음 날 표선 해수욕장에서 강덕환 시인과 박구용 교수님의 설명은 이 확신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유독 하얗게 빛나는 해수욕장의 모래를 제주방언으로 '한모살'이라고 했다.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모살'은 모래이다.
실제로 한강 작가는 표선 한모살에서 큰 소지를 펼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유도 모른 채 죽은 4.3의 민초들 영혼을 위로하는 제를 올렸고, 그것을 기초로 만든 것이 오른쪽 표지의 모습이다고 한다.
소설에 보면 한라산으로 숨었다가 자수를 권고하는 내용을 듣고 하산했다가 바닷가에서 처형된 양민들의 얘기가 나온다. 썰물로 인하여 다음날이면 그 많던 주검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심지어는 쓰시마섬까지 떠밀려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주 사람들은 바닷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표선 한모살은 그 학살이 이루어졌던 비극의 현장이다.
한강 작가가 그곳에서 펼쳤던 소지(素紙)에는 4.3 희생자들의 억울한 핏빛 원혼이 담겨 있고, 죽음을 넘어 진실이 바닷물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배어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 침묵의 장소에 가장 순수한 형태의 소지를 펼쳐놓음으로써, 역사의 폭력으로 인해 기록되지 못한 이름들과 흔적 없이 사라진 시신들을 향한 거룩하고 근원적인 애도를 한 것이다.
이제 그 간절함은 독자들의 몫이 되었다.
숭고함을 품고, 소설이 말하고자 했던 고통의 연대를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이 비극적인 땅 위에 서서 할 수 있는 문학의 가장 고귀한 행위일 것이다.
#한강 #작별하지않는다 #4.3평화공원 #제주문학관
박구박구용 교수 제주 철학원정대 참가기 1용 교수 제주 철학원정대 참가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