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빛을 가로막는 가지들

by Helia

사람도 잘라내야 산다. 가지치기를 미루는 동안 먼저 시드는 건 늘 내 마음이었다. 애매하게 남겨둔 관계는 결국 나를 아프게 할 뿐이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나무가 햇빛을 향해 살아남기 위해 마른 가지를 떨어뜨리듯, 나 역시 내 삶을 갉아먹는 줄기들을 하나씩 끊어내야 했다. 잘라내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는 단순한 진실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나는 오래도록 상처를 감추는 것이 성숙이라고 착각했고, 버티는 것이 인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 삶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는 언제나 잘라내지 못한 관계들이 드리워놓은 것이었다.

인간관계는 정원과 같다. 돌보지 않으면 금세 헝클어지고, 방치하면 뿌리까지 엉켜버린다. 어떤 사람은 봄을 부르는 꽃이 되고, 어떤 사람은 묵묵히 땅을 지탱하는 뿌리가 되며, 어떤 사람은 잎사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된다.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은 벌레처럼 스며들어 줄기를 갉아먹고, 상처처럼 오래도록 남아 잎맥을 마르게 한다. 나는 때로 그런 이들에게조차 온기를 건네면 변화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무가 스스로를 해치는 가지를 품고 살아남는 법은 없다. 결국 나 역시 그런 관계를 품고 살기엔 너무 작은 존재였고, 너무 지쳐 있었다.

어떤 인간관계는 천천히 나를 무너뜨린다. 감정의 균형이 흐트러지고, 상대의 눈치를 살피느라 하루의 리듬이 깨지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 전체가 흔들리는 날들이 쌓여간다. 그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 관계는 반드시 잘라내야 한다는 것을. 그런데도 어떻게든 붙들어보려 했다. 이유는 익숙함이었다. 익숙한 불편함이 낯선 평온보다 더 안전해 보일 때가 있다. 나는 그 익숙함 속에서 줄기처럼 비틀어졌고, 마침내 햇빛을 잃어버렸다.

잘라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건 속 시원함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가지가 떨어진 자리처럼 마음이 시렸다. 바람이 스치는 빈틈이 낯설었다. 하지만 그 빈틈은 곧 숨통을 틔워주는 창이 되었다. 상처는 환기를 만나야 비로소 아문다. 내가 오래 품었던 관계는 상처 위에 덧씌워진 두꺼운 막 같았고, 그것을 제거한 뒤에야 나는 내 본래의 모습을 마주했다. 무겁게 눌리던 느낌이 사라지자, 뿌리 깊은 곳에서부터 미세한 온기가 올라왔다. 그 온기가 나를 일으켜 세우기 시작했다.

관계를 정리하면 삶의 공기가 달라진다. 빛이 통과할 틈이 생기고, 호흡이 길어지고, 주변의 소리가 다르게 들린다. 잘라냈기에 비로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늘 내 옆에 있었지만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이들, 어느 계절에도 변함없이 나를 향해 조용히 손 내밀던 이들, 줄기 깊은 곳에서 나를 지탱하고 있던 뿌리 같은 사람들. 그들은 내가 마른 가지를 붙잡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존재였다. 내가 잃을까 봐 두려워했던 건 사실 잃어도 되는 것들이었고, 내가 무심히 흘려보내던 건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살면서 마주하는 이별 중에는 설명이 필요 없는 것들이 있다. 싸움도 다툼도 없이, 어느 날 조용히 마음이 닫혀버리는 이별. 그 끝에는 늘 한 사람의 결심이 있다.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 더 이상 자신을 버려가며 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선언. 나는 그런 결심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 들었다. 감정의 저울이 기울어지고, 한쪽만 계속 무겁게 쌓여가는 관계는 가지치기의 신호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단지 다른 방향으로 자란 두 개의 나무가 서로에게 그늘이 되었을 뿐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때로는 포기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것을. 내가 버린 건 사람이 아니라 내 속을 좀먹는 그림자였다. 그리고 나는 그림자 대신 빛을 선택해야 했다. 빛을 선택하는 일은 언제나 혼란을 동반한다. 하지만 가지를 잘라낸 자리에서 새싹이 돋고, 다시 가지가 자라나고, 마침내 꽃이 피어난다. 잘라낸 만큼 자란다는 말은 삶의 진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내 마음을 희생시키며 관계를 붙들지 않을 것이다.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말투, 나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태도, 나를 투명하게 취급하는 시선, 나를 필요할 때만 찾는 편의적 연결. 그것들은 가지가 아니라 가시였다. 내가 그 가시를 손으로 움켜쥘 때마다 피가 났고, 그 피를 닦는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이제는 피 흘리지 않기로 했다. 나를 지키는 일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봄이 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단단한 줄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분다고 쉽게 휘청이지 않고, 누군가의 말에 방향을 잃지 않고, 중심에서 균형을 잡는 나무. 스스로 빛을 향해 자라는 나무. 더는 해가 되는 가지를 붙들지 않는 나무. 가지치기는 잔인함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이고, 이별이 아니라 성장의 시작이다. 잘라낸 자리마다 새로운 숨결이 피어오를 것이다. 나를 갉아먹던 그림자를 지워낸 공간에 햇살이 밀려올 것이다. 삶이 천천히 환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한 결심으로 스스로를 정비한다. 무심히 걸어가듯, 그러나 분명한 의지로. 내 마음을 흐리게 하는 어둠을 걷어내고, 나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다.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 맞지 않는 관계를 내려놓는다. 언젠가 내 삶 전체가 부드럽게 빛나는 숲이 되기를 바라며. 내가 키워야 할 건 언제나 사람보다 먼저 나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며. 그리고 마침내, 잘라낸 선택들이 나를 더 멀리, 더 높이, 더 맑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걸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