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꽃이 지는 이유

조용히 물러나는 것에 대하여

by Helia

꽃은 왜
끝내 붙잡히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가
나는 그 질문을
아침마다 하늘에 올려두고
답을 받지 못한 채
바람만 한 줄기 빌려온다

하늘은 늘 그렇듯
아무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지나간 것들을 오래 붙들지 말라는 듯
빛을 조금 낮출 뿐이다

어쩌면 꽃은
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사라지는 법을 배우기 위해
이 땅에 잠시 머무는지도 모른다
머무름이 아니라
물러남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장 먼저 연습하는 존재처럼

나는 이름 모를 꽃 앞에 서서
끝내 말하지 못한 문장들을
가슴속에서 접는다
붙잡고 싶다는 말
떠나지 말라는 말
그 말들은 늘
나를 먼저 상처 입혔다

별을 헤던 밤처럼
나는 꽃의 시간을 센다
하루, 이틀, 사흘
숫자는 늘어나는데
꽃은 점점 가벼워진다
남아 있으려 애쓰지 않는 모습이
오히려
가장 단단해 보였다

지지 않으려는 것들은
언제나 소란스럽고
지는 것들은 늘
자기변명을 남기지 않는다
꽃은 마지막까지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꽃잎 하나 떨어지고
나는 그 이유를
비로소 나에게서 찾는다
붙잡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던 시간들
그 믿음이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남겼는지
뒤늦게야 알게 된다

꽃이 지는 이유는
패배가 아니라
배려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봄을 빼앗지 않기 위해
다음 계절이
머뭇거리지 않게 하기 위해
조용히
자리를 비워두는 것

밤이 깊어
별들이 하나둘 눈을 뜰 때
꽃은 이미
자기 몫의 빛을 내려놓았을 것이다
빛나지 않아도
사라져도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오늘도
지는 꽃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나 또한
이렇게 조용히
물러날 수 있기를
지는 법을 아는 것만이
남기는 윤리임을 잊지 않기를

하늘과 바람과
별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빌어본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