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3화|지나온 시간들

별빛 아래서 다시 부르는 이름들

by Helia

시간은 언제나
내 걸음보다 반 발쯤 앞서 걸어갔다.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며
지나온 날들을
마치 떨어진 별조각 줍듯
하나씩 주워 담아왔다.

밤하늘은 오늘도 묵묵했고
바람은 오래된 편지처럼 스쳐갔다.
스치는 결마다
내 지난 얼굴들이 잠시 머물다
다시 흩어졌다.
붙잡으려 하면 사라지고,
외면하려 하면 더 선명해지는 것들.

문득 멈춰
나는 내가 잃어버린 날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그 이름들은
가슴 한쪽에서 작은 불빛이 되어
오래된 상처의 흔적까지
부드럽게 비춘다.
그제야 나는 안다.
돌아보지 않았다면
결코 여기에 닿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별 하나가
아주 느리게 흔들린다.
그 떨림 속에서
내 어린 날의 웃음이 스치고,
말없이 등을 돌렸던 사람들의 뒷모습이 지나가며,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던 나도
잠시 고개를 든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내가 버린 마음들과
내가 지켜낸 마음들이
한꺼번에 별빛이 되어 내려앉는다.
그 아래에서 나는
내게 아주 작게 속삭인다.

“지나온 시간들아,
너희는 나의 그림자였지만
오늘은 나의 등불이 되어다오.”

그 말을 삼키듯
밤은 조용히 빛을 끌어모으고,
나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기억과 현재가 얇은 막처럼 겹쳐지는 자리,
내일의 첫 발자국이 시작되는 곳을 향해.

그리고 마음속으로
아주 작은 질문을 던진다.

― 당신의 지나온 시간들은
오늘의 당신에게 어떤 얼굴로 남아 있나요.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