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박자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리듬
영화 〈Beat〉는 재미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감동적이라고 단정하기도 애매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고 나면 오래 남는다. 화면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말을 걸어오는 영화다.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할 것이고, 누군가는 끝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어떤 사람에게는 깊게 파고든다는 사실이다. 마치 정리되지 않은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도는 것처럼.
〈Beat〉는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분위기를 흘려보낸다. 줄거리를 따라가려는 순간, 영화는 일부러 방향을 틀어버린다. 인물들은 목적지를 향해 걷지 않고, 장면들은 깔끔하게 이어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 어긋남이 낯설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의 리듬 자체가 비트 제너레이션의 호흡이라는 걸. 일정한 박자 대신 엇박으로 뛰는 심장, 규칙보다 충동에 가까운 삶의 속도. 이 영화는 그 불균형을 고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대로 두는 쪽을 택한다.
윌리엄 버로스,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이름만으로도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이들은 여기서 위대한 작가가 아니라, 불안정한 인간으로 존재한다. 영화는 그들의 업적보다 그들의 흔들림에 더 오래 머문다. 술에 젖은 밤, 의미 없는 듯 이어지는 대화, 방 안에 가득 찬 담배 연기. 이 장면들은 천재성의 증거라기보다는, 버티기의 기록처럼 보인다.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쓰고 말하는 사람들. 그래서 이 영화 속 예술은 고상하지 않다. 절박하고, 때로는 초라하다.
버로스는 특히 인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늘 세상에서 반 발짝 물러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냉소적인 말투, 감정을 감춘 얼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태도. 하지만 그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그의 말은 더 날카롭게 꽂힌다. 그는 삶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지만, 삶을 끝까지 관찰한다. 애정을 품기엔 너무 많이 봐버린 사람처럼. 그 시선이 이 영화를 무겁게 만든다. 동시에 정직하게 만든다.
〈Beat〉가 흥미로운 이유는 ‘젊음’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영화 속 젊음은 자유롭지만 불안하고, 대담하지만 쉽게 무너진다.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더 많이 잃어간다. 영화는 그 과정을 낭만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자유에는 보호막이 없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보고 나면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자유란,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태라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리듬 또한 이 영화의 중요한 언어다. 장면은 불규칙하게 이어지고, 대화는 서로를 향하지 않은 채 흘러간다. 처음에는 집중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내 그 혼란이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인생 역시 설명 없이 건너뛰는 순간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영화는 그 공백을 억지로 메우지 않는다. 이해하라고 강요하지 않고,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태도를 유지한다.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거대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장면들이었다. 술잔을 내려놓는 손의 떨림,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는 눈, 방 안에 가라앉은 침묵. 그 순간들에서 나는 문득 지금의 나를 떠올렸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멈출 수는 없는 상태. 정답을 찾기엔 늦었고, 포기하기엔 아직 살아 있는 감정들. 이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공허는 결코 과거의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Beat〉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감정의 동선을 설명해주지 않고, 인물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도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끝까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불친절함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체계와 규칙을 거부했던 비트 제너레이션의 정신을, 영화의 형식 자체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깔끔하지 않은 구조, 흔들리는 호흡, 때로는 의미가 미끄러지는 대사들. 이 모든 것이 의도된 혼란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는 예술가의 삶을 동경의 대상으로 세우지 않는다. 예술은 구원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처를 키우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창작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고, 그 선택은 삶 전체를 흔든다. 〈Beat〉는 그 무게를 감추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막연한 환상이 조금은 벗겨진다. 대신 현실적인 질문이 남는다. 나는 어떤 대가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영화는 설명을 포기한다. 대신 여운을 남긴다. 살아남은 사람들과 사라진 사람들, 끝내 이름을 남긴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그 모든 흔적이 뒤섞여 하나의 시대를 이룬다. 박자가 일정하지 않은 리듬, 그러나 분명히 존재했던 맥박. 나는 그 맥박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마음속에서 이어지는 걸 느꼈다.
〈Beat〉는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옆에 앉아 있는 영화다. 지금의 삶이 조금 어긋나 있다고 느끼는 사람, 정돈된 답보다 솔직한 흔들림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영화는 조용히 말을 건다. 너만 이런 게 아니라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신뢰한다’고 말하고 싶다. 불완전한 인간들을 끝까지 불완전한 채로 남겨두는 태도. 그 정직함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재미없게 느껴진다면, 어쩌면 지금의 삶이 너무 정돈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이 영화가 마음에 걸린다면, 당신 역시 어딘가에서 자신의 리듬을 찾고 있는 중일 가능성이 크다. 〈Beat〉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너는 지금 어떤 박자로 살아가고 있느냐고. 그 질문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제 몫을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