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초화려!! 떡잎마을 댄서즈

by Helia

순둥이 맹구가 폭군이 되는 이야기를 보며, 나는 왜 아직도 짱구를 놓지 못하는지 알게 됐다. 착한 사람은 언제부터 이렇게 쉽게 망가지는 존재가 되었을까. 조용하다는 이유로, 말이 없다는 이유로, 괜찮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가장 먼저 닳아버리는 얼굴들. 이 영화는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처럼 웃으며 시작하지만, 끝내 어른들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고 멈춘다.
떡잎마을 어린이 엔터 페스티벌에서 우승한 떡잎마을 방범대는 인도 엔터 페스티벌 무대에 초청받아 여행을 떠난다. 화면 가득 쏟아지는 색채와 음악은 축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 화려함은 곧 질문으로 바뀐다. 즐거움이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누가 웃고, 누가 참고 있었는가. 짱구는 늘 그렇듯 중심을 휘젓고, 철수는 계획표를 붙잡고, 유리는 감정의 파도를 넘나들며, 훈이는 공기의 방향을 살핀다. 그리고 맹구는 조금 뒤에서 걷는다. 말 대신 표정을 들고, 돌 대신 풍경을 주머니에 넣은 채.
사건은 거창하지 않게 시작된다. 시장 골목의 수상한 잡화점, 코 모양처럼 생긴 배낭, 그리고 그 콧구멍에 꽂혀 있던 휴지 같은 종이 한 장. 너무 하찮아 보여서 의심받지 않는 것. 권력은 늘 그런 얼굴로 다가온다. 맹구는 홀린 듯 그 종이를 자신의 코에 꽂아버린다. 그 순간, 세계의 공기가 달라진다. 조용하던 아이의 내부에서 알 수 없는 힘이 분출되고, 침묵은 욕망의 언어로 번역된다.
그 종이의 정체는 단순하다. 코에 꽂는 사람의 욕망을 깨운다. 참아왔던 마음을 끌어올리고, 무자비하고 제멋대로인 폭군으로 만든다. 문제는 그 욕망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있었고, 다만 말해지지 않았을 뿐이다. “나에 대해 다 아는 척하지 마.” 맹구의 외침은 협박이 아니라 오래된 고백처럼 들린다. 착하다는 말 뒤에 숨겨진 무수한 생략들, 말이 없다는 이유로 지워진 질문들.
흑화 한 맹구의 폭주는 과장과 우스꽝스러움 사이에서 묘하게 현실적이다. 힘은 커지고 판단은 가벼워진다. 질서는 그의 걸음 아래서 종이처럼 구겨진다. 이 장면이 불편한 이유는 악당의 탄생이 아니라, 폭군의 논리가 낯설지 않아서다. 회사에서 조용히 일만 하던 사람, 가족 모임에서 늘 괜찮다고 말하던 사람, 친구들 사이에서 불편한 말은 삼키던 사람. 우리는 그들이 갑자기 등을 돌릴 때 놀란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 이 영화는 그 질문을 거꾸로 되돌린다. 왜 우리는 먼저 묻지 않았느냐고.
춤은 여전히 중심에 있다. 하지만 맹구의 춤은 다르다. 즐거움의 흔들림이 아니라, 눌러 담은 감정의 진동이다. 박자는 정확하지만 표정은 비어 있고, 동작은 화려하지만 눈빛은 가라앉아 있다. 모두가 같은 음악에 맞춰 움직일 때, 맹구만 다른 리듬에 서 있다. 그 어긋남이 곧 경보다. 흑화는 타락이 아니라 신호다. 더 이상 괜찮지 않다는 몸의 언어다.
짱구는 이 균열 앞에서 특유의 방식으로 선다. 설교하지 않고, 정의를 휘두르지 않는다. 그저 같은 무대에 오른다. 철수는 계산을 내려놓고, 유리는 감정의 날을 접는다. 훈이는 눈치를 멈추고 손을 든다. 아이들은 맹구를 제압하려 들지 않는다. 이해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대신 거리를 줄인다. 엇박자의 몸짓으로, 서로의 리듬을 부딪치며. 폭주를 멈추게 하는 것은 더 큰 힘이 아니라, 더 가까운 거리라는 사실을 이 영화는 잔인할 만큼 단순하게 보여준다.
결정적인 순간, 맹구는 배낭의 콧구멍에서 그 종이를 뽑아낸다. 권력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내려놓는 선택으로 사라진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숨이 돌아온다. 그는 다시 말이 적은 아이로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말의 무게를 아는 아이가 된다. 늘 손에 쥐고 다니던 돌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무겁지만 필요했던 것, 그러나 영원히 쥐고 있을 필요는 없었던 것.
이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는, 맹구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코앞에 그런 종이가 있기 때문이다. 하찮아 보이는 계기 하나가 욕망을 깨우고, 침묵을 권력으로 바꾸는 순간. 세상이 팍팍해질수록, 사람들의 인심이 얇아질수록 그 종이는 더 쉽게 꽂힌다. 그래서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조용한 사람의 욕망을 얼마나 자주 건너뛰는가. 착하다는 말로 얼마나 많은 신호를 지워왔는가.
엄마의 핀잔이 떠오른다. 나이가 몇인데 이런 걸 보느냐고. 나는 인도의 색채와 아이들의 엇박자 춤을 보며 대답을 준비한다. 이런 이야기는 아이들보다 어른에게 먼저 필요하다고. 말 없는 사람의 폭주를 막는 방법은 통제도 처벌도 아니라, 미리 묻는 용기라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짱구를 틀어놓는다. 웃기 위해서가 아니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코앞의 종이를, 그리고 그 종이가 꽂히기 전의 침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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