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 넥스트 도어:장도연이 이준혁에게 권했던 영화,

장도연이 이준혁에게 권했던 영화,

by Helia

이 영화는 원래 볼 생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마음이 끌리는 쪽은 아니었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았고, 조용하고 무거울 것 같았고, 괜히 마음만 더 가라앉힐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틀어둔 살롱드립에서 장도연이 배우 이준혁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는 장면을 보게 됐다. 요란한 설명도, 과한 감상도 아니었다. 그냥 “이 영화, 한 번 보세요”라는 식의 담담한 권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궁금해졌고, 왜 저런 톤으로 추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룸 넥스트 도어를 보게 됐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장도연이 왜 이 영화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울어야 할 것 같다는 신호도 보내지 않고, 삶과 죽음에 대해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라고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그저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 아주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어디까지 타인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나요?” 이 질문은 생각보다 무겁고,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래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는다.
이 영화는 죽음을 다루지만, 죽음 그 자체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죽음을 앞둔 사람과, 그 곁에 남은 사람 사이의 ‘거리’를 보여준다. 함께 같은 방에 있지 않고, 바로 옆방에 있는 관계. 이 설정은 처음엔 조금 낯설고, 어쩌면 차갑게 느껴진다. 왜 굳이 옆방일까. 왜 끝까지 곁에 있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이 거리가 얼마나 정직한 선택인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완전히 혼자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매달리고 싶지도 않은 마음. 사랑하지만, 상대의 결정을 바꾸고 싶지는 않은 태도. 이 영화는 바로 그 애매하고 불편한 지점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에서 공간은 언제나 감정과 맞닿아 있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집은 아름답고 정갈하지만, 따뜻하기보다는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을 준다. 색감은 여전히 선명하지만, 감정을 폭발시키기보다는 눌러 담는 쪽에 가깝다.


빨강은 열정이 아니라 결심처럼 보이고, 파랑은 슬픔이라기보다 정적에 가깝다. 이 영화의 색과 공간은 울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버틴다. 그리고 그 버팀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남는 건, 큰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들이다. 커피를 마시는 장면, 창밖을 바라보는 시선, 말을 꺼낼 듯 말 듯 망설이는 침묵. 우리는 보통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을 기억하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하나의 감정이 된다. 그 감정은 슬픔이라기보다는 존중에 가깝다. 상대의 선택을 이해하려 애쓰는 태도, 끝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부정하지는 않으려는 마음.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이 감정이 영화 전반을 조용히 지배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여러 번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나라면 저 부탁을 들어줄 수 있을까. 나라면 저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쉽게 상대를 붙잡으려 한다.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을 바꿔보자고,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선의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으면서. 하지만 이 영화는 묻는다. 그 말들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남겨질 자신을 위한 위로인지. 이 질문은 영화 속 인물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는 나 자신에게도 향해 있었다.

**〈룸 넥스트 도어〉**는 위로를 주는 영화는 아니다. 희망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선택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남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는 감정 하나가 가슴 한쪽에 남아 계속해서 말을 건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우리가 외면해 왔던 태도를 정면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해 끝까지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 선택인지 이 영화는 너무 조용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이 영화는 누구에게나 쉽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용히 오래 남는 영화를 좋아한다면, 보고 나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는 분명히 깊게 스며든다. 나 역시 그랬다. 보기 전에는 그냥 ‘한 편의 추천 영화’였지만, 보고 난 뒤에는 쉽게 잊히지 않는 질문 하나를 남겼다.

그래서 다시 그 장면이 떠올랐다. 살롱드립에서 장도연이 이 영화를 추천하던 순간. 왜 그렇게 담담했는지, 왜 굳이 설명하지 않았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이 영화는 말이 많아질수록 어긋나는 영화다. 설명하지 않을수록, 감정을 강요하지 않을수록 더 정확해진다. 장도연의 추천 방식이 이 영화와 닮아 있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룸 넥스트 도어〉**는 죽음에 대한 영화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의 태도에 대한 영화다. 누군가의 선택 앞에서 어디까지 다가갈 수 있는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그 경계를 끝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며 나는 문득 ‘옆방’이라는 단어를 오래 곱씹게 됐다. 삶에서도 우리는 종종 누군가의 옆방에 머문다. 완전히 들어가지도, 완전히 떠나지도 않은 채. 그 애매한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다만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듣고, 그 선택을 부정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고 싶어 졌다면, 이유는 충분하다. 나처럼 우연히 장도연의 추천을 계기로 보게 됐더라도, 이 영화는 분명히 각자의 방식으로 오래 남는다. 크게 울지 않아도, 눈에 띄는 장면이 없어도, 이 영화는 조용히 마음 한쪽 방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그 방의 문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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