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프로젝트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처음 떠올리게 된 건 영화 그 자체보다도,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살롱드립에서 장도연이 <룸 넥스트 도어>를 이야기하고, 그 대화의 반대편에서 이준혁이 조용히 추천한 영화. 아이들이 귀엽고 색감이 참 예뻤다며, 자신도 봤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장도연의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귀엽다, 예쁘다. 보통은 거기서 끝나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말들로 시작해, 그 말들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증명하는 쪽으로 흘러간다.
이 영화의 첫인상은 정말로 사탕 같다. 화면은 과하게 밝고, 분홍과 보라가 서로를 밀어내며 반짝인다. 아이들은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햇볕 아래서 쉼 없이 달린다. 웃음은 가볍고, 세상은 넓어 보인다. 디즈니월드 근처라는 설정은 그 모든 장면에 동화 같은 착각을 덧칠한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곳은 꿈의 입구가 아니라 꿈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장자리라는 걸 알게 된다. 모텔이라는 이름의 임시 거처,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방, 내일을 약속하지 않는 하루. 영화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그 안에서 하루를 살아가게 할 뿐이다.
아이들은 이 세계를 문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오늘 아이스크림을 몇 번 먹을 수 있는지, 어느 폐허가 더 재미있는 놀이터인지, 누가 먼저 웃음을 터뜨릴 수 있는지다. 가난은 아이들의 언어가 아니다. 그건 어른들이 뒤늦게 붙이는 이름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있을수록, 관객은 너무 많은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웃음이 진짜라는 사실이, 그 웃음을 지켜주지 못하는 현실을 더 또렷하게 만든다.
어른들의 얼굴은 늘 긴장 속에 있다. 버티는 표정, 애써 무너지지 않으려는 태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붙잡은 손. 이 영화는 선한 어른과 나쁜 어른을 구분하지 않는다.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 누군가는 책임이라는 단어에 매달리고, 누군가는 체면이라는 얇은 종이를 두른다. 그리고 그 모든 균열은 아이들 앞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아이들은 그걸 이해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해는 늘 나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의 몫이다.
색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함정이다. 너무 예뻐서, 잠시 현실을 잊게 만든다. 햇빛은 과할 정도로 쏟아지고, 그림자는 그만큼 선명해진다. 이 영화의 색은 위로가 아니라 대비다. 밝음으로 어둠을 가리기보다, 밝음으로 어둠을 더 도드라지게 만든다. 그래서 보고 나면 마음이 묘하게 무거워진다. 울지도 않았고, 큰 사건이 터진 것도 아닌데, 어딘가 오래 눌린 느낌이 남는다. 이 영화는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아주 조용히 잠식한다.
중반을 지나며 깨닫게 된다. 이 영화가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을 왜곡 없이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걸. 아이들의 시선은 세상을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통과한다. 그 시선 덕분에 관객은 어른의 언어로 포장된 가난이나 비극 대신, 날것의 일상을 보게 된다. 이 영화는 연민을 요구하지 않는다. 판단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여기 이런 하루가 있다”라고 말할 뿐이다.
마지막에 다다르면, 영화는 한 번 더 관객을 시험한다. 이 선택이 희망인지, 도피인지, 혹은 아이에게 허락된 유일한 출구인지는 끝내 명확히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엔딩은 아름답지만 불편하다. 환상처럼 보이지만, 그 환상이 왜 필요한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진다. 현실이 너무 가혹할 때, 아이는 어디로 도망칠 수 있을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남기고, 조용히 화면을 닫는다.
아마도 이준혁이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 그리고 장도연이 “나도 봤다”며 공감한 이유는 여기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지적인 해석보다 감각적인 체험에 가깝다. 보고 나면 말을 잃게 되고, 누군가에게 설명하려다 멈추게 된다. 예쁘다는 말로 시작했지만, 그 말만으로는 끝낼 수 없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가볍게 추천하기엔 너무 무겁고, 무거운 영화를 각오하고 보기엔 이상할 만큼 눈부시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아이들이 귀여워서 기억에 남고, 그 귀여움이 지켜지지 않는 세계라서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왜 예쁜 것에 마음이 놓이는지, 그리고 그 예쁨 뒤에 무엇을 외면해 왔는지를. 다 보고 나면, 다시는 ‘색감이 참 예쁜 영화’라는 말만으로는 이 작품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게 이 영화가 남긴 가장 정직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