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 속에서만 피어나는 것
ㄷCharles Koechlin – Les Heures persanes, Op.65 : No. 14 « Sieste, avant le départ »
겨울이 오면 나는 자꾸 꿈을 믿게 된다. 믿지 않으려 애써도, 차가운 밤마다 현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꽃 하나가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걸 보게 된다. 그것은 이름도 색도 분명하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는 감각만큼은 또렷하다. 그래서 나는 그 꽃을 겨울 몽화라 부른다. 겨울이라는 계절이 품은 꿈의 형상, 차가움 속에서만 허락되는 비밀 같은 것.
눈이 내리면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른다. 소리는 낮아지고, 움직임은 느려진다.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지는 그 틈에서, 마음은 오히려 바쁘게 움직인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장면들이 불쑥 떠오르고, 오래 전의. 얼굴이 아무 예고 없이 스친다. 겨울은 기억을 얼리는 계절 같지만, 실은 가장 깊이 흔드는 계절이다. 차가움이 감정을 눌러놓는 대신, 꿈이라는 방식으로 우회해 드러나게 만든다.
몽화는 늘 밤에 온다. 난방이 꺼진 방, 희미한 가로등 불빛,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냉기 같은 것들이 배경이 된다. 잠과 깨어 있음의 경계가 흐려질 즈음, 그 꽃은 슬며시 고개를 든다. 활짝 피어 있지도, 막 봉오리를 틔운 것도 아니다. 마치 누군가의 말을 끝내 듣지 못한 채 멈춰 선 표정처럼 애매한 상태로 존재한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닿는 순간 사라질 것 같아 선뜻 다가가지 못하게 만드는 거리.
몽화는 위로가 아니다. 다만 완전히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줄 뿐이다. 그 꽃은 따뜻한 말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차갑게 식어버린 감각을 살짝 건드린다. 아직 살아 있다고, 아직 느낄 수 있다고. 겨울의 꿈은 늘 그렇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포기하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현실의 겨울은 생략의 계절이다. 나무는 잎을 떨구고, 풍경은 색을 잃는다.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내려놓은 채, 최소한의 형태만 남긴다. 하지만 꿈속의 겨울은 정반대다. 생략된 자리마다 감정이 자라난다. 말하지 못한 마음, 끝내 정리하지 못한 관계, 애써 외면해 온 후회들이 꽃의 모양을 빌려 다시 나타난다. 몽화는 그 잔여물들의 집합이다.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것들이, 겨울이라는 조건 아래에서만 허락받은 개화.
가끔은 몽화가 너무 선명해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의 웃음소리, 오래전 불러주던 이름, 돌아갈 수 없는 장소의 공기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그 순간만큼은 시간의 방향이 헷갈린다. 과거인지 현재인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흐려진다. 하지만 깨어나면 알게 된다. 그것은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남아 있던 것들이었다는 사실을.
몽화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눈처럼, 혹은 입김처럼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래서 더 마음에 남는다. 붙잡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소유하려 하지 않게 된다. 겨울의 꿈은 그렇게 태도를 바꾼다. 가지지 않아도 되는 감정, 끝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한다.
낮에도 몽화의 흔적은 남아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장갑을 벗은 손끝이 시릴 때 문득,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텅 비는 순간에 문득. 꿈은 밤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나치게 단단해질 때 틈을 타 스며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알게 된다. 아직 내 안에 겨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아직 피지 않은 꽃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겨울을 견디는 계절이라 말한다. 지나가길 기다리고, 버텨내야 할 시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겨울을 배우는 계절이라 생각한다. 차가움 속에서도 피어날 수 있는 것, 보이지 않아도 분명 존재하는 감정에 대해. 몽화는 겨울이 건네는 가장 조용한 수업이다. 크게 말하지 않고, 오래 설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꿈이라는 형식으로 한 번 보여줄 뿐이다.
눈이 녹으면 몽화도 사라진다. 봄이 오면 꽃은 다시 제철의 언어를 입고, 꿈은 현실의 시간표에 자리를 내준다. 하지만 겨울에 피었던 그 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으로 돌아가, 다시 차가워질 날을 기다린다. 다시 꿈이 필요해질 날을 기다리며.
그래서 나는 이제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얼어붙은 풍경 너머에, 언젠가 다시 피어날 꿈을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환영일지라도, 잠시 스쳐가는 상상일지라도 상관없다. 겨울 몽화는 충분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아무 말 없이 피어 있는 그 꽃 하나로도 마음은 다시 숨을 쉰다. 어쩌면 당신에게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겨울의 꽃 하나쯤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