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장|종이비행기

하늘로 접어 보내는 말

by Helia

추천 클래식

카를 라이네케(Karl Reinecke) –
「Undine Sonata for Flute and Piano, Op.167 : II. Intermezzo」


종이비행기를 접은 건, 말을 전할 수 없어서였다. 전화를 걸 수 없고, 편지를 부칠 주소도 없는 곳으로 보내야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록달록 색색의 종이를 꺼내 책상 위에 펼쳐 놓고, 나는 한 장을 골라 반으로 접었다. 접힌 선은 방향이 되었고, 방향은 마음을 움직였다. 무엇을 적을지보다 어디로 날릴지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 순간, 비행기는 이미 출발한 셈이었다. 종이는 가볍고 비행기는 더 가볍다. 그래서 그 위에 얹히는 마음만큼은 무겁지 않기를 바라며, 그리움만 싣고 걱정은 남겨두는 연습을 시작했다.
어릴 적 종이비행기는 멀리 날아가는 게 전부였다. 더 높이, 더 오래, 더 멀리. 바람을 읽지 못해 벽에 부딪히고 바닥에 고꾸라져도 다시 접으면 그만이었다. 종이는 구겨졌지만 마음은 다치지 않았다. 실패가 실패처럼 느껴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손은 조심스러워졌고, 종이는 아끼는 대상이 되었다. 멀리 보내는 일보다 정확히 보내는 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비행기의 목적지는 기록이 아니라 전달이 되었다. 보여주기보다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종이를 다시 가볍게 만들었다.
색을 고르는 일은 말보다 먼저 시작되는 고백이다. 노란 종이는 햇볕 같은 웃음을 닮았고, 파란 종이는 오후의 고요를 닮았다. 분홍은 오래된 사진의 가장자리에 남아 있던 온기이고, 초록은 비 오는 날 창가의 숨이다. 나는 그 색들을 하나씩 접어 올린다. 말로 다 하지 못한 문장들을 접선에 숨기듯. 종이의 결이 손에 닿을 때, 잉크보다 오래 남는 촉감이 있다. 기억은 늘 촉감에서 먼저 깨어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시간은 늘 느렸다. 밥은 식어도 괜찮았고, 이야기는 끊겨도 괜찮았다. 할머니는 뜨거운 국을 바로 먹지 말라고, 김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라 하셨다. 할아버지는 말수가 적었지만, 손을 내밀 때는 늘 따뜻했다. 그 느림 속에서 나는 자랐다. 지금의 나는 자주 서두르고 쉽게 지친다. 종이비행기를 접는 동안만큼은 그 느림을 되찾는다. 접힌 선마다 시간이 접힌다. 한 번 더 접을 때마다 어제와 오늘이 겹친다.
비행기 위에는 글자를 쓰지 않는다. 대신 마음을 얹는다. 보고 싶다는 말은 단순해서 더 무겁다. 그 무게가 비행을 방해하지 않기를 바라며, 숨을 고른다. 부디 그곳에서는 편안하시기를. 아침이 서두르지 않고, 저녁이 길게 머물기를. 통증보다 햇살이 먼저 닿고, 외로움보다 이야기가 먼저 오기를. 이런 바람들은 글자보다 바람에 어울린다. 그래서 나는 접는다. 접고 또 접는다. 바람이 알아서 읽게 두기 위해서.
종이비행기를 날릴 때마다 하늘은 조금 낮아진다. 손에서 놓는 순간, 손의 빈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에 생각이 앉는다. 비행기는 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흔들리고, 망설이고, 때로는 되돌아온다. 그 모습이 닮았다. 그리움은 늘 곧장 가지 않고 돌아서 간다. 빙빙 돌며 마음의 바깥을 스친 뒤에야 목적지에 닿는다. 그래서 기다림은 필요하고, 기다림은 조용하다.


잠깐, 숨을 고른다.
바람을 본다.
손끝을 편다.
그리고 놓는다.

종이는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낮에는 구름이 봉투가 되고, 햇빛은 봉인을 푸는 칼날이 된다. 밤에는 별빛이 작은 활주로가 되어 방향을 안내한다. 나는 속으로 말을 건넨다. 잘 지내고 계시죠. 이곳은 여전히 바쁘고, 가끔은 너무 조용해요. 그래도 잘 먹고, 잘 걷고, 잘 버티고 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은 여기 두고 갈게요. 대신 웃음만 실어 보낼게요.
종이비행기는 결국 떨어진다. 착륙은 늘 예고 없이 온다. 바람이 멈추거나 힘이 다하면 자연스럽게 내려온다. 그때마다 나는 주워 든다. 구겨진 부분을 펴고, 다시 접는다. 그리움도 그렇다. 한 번 보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 다시 접히고, 다시 날아간다. 반복 속에서 마음은 조금씩 단단해진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듯, 아픔이 부서지지 않는 법을 배운다.
밤이 되면 색은 더 선명해진다. 낮에 고르지 못했던 색들이 어둠 속에서 제자리를 찾는다. 나는 마지막 비행기를 접는다. 부디 그곳의 밤은 춥지 않기를. 이불은 가볍고, 꿈은 포근하기를. 내가 접은 비행기가 도착해 잠자리에 놓이기를 상상한다. 대답은 오지 않겠지만, 대답이 없어도 괜찮다.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한 번 숨을 쉰다.
종이비행기는 대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많이 보낸다. 도착 여부를 묻지 않기 위해서, 바람에 실렸다는 사실을 믿기 위해서. 전해졌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나는 오늘도 색을 고르고 선을 맞춘다. 손끝에 남은 종이의 온기를 잠시 쥐었다가, 하늘을 향해 놓아준다.
알록달록한 비행기들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그 사이로 내 마음도 흩어진다. 그러나 흩어짐은 소멸이 아니라 확장이다. 그리움은 멀리 갈수록 가벼워지고, 가벼워질수록 오래 머문다. 부디 그곳에서 편안히 지내고 계시기를. 보고 싶다는 말이 바람을 타고 오늘의 하늘을 건너 무사히 닿기를. 그리고 언젠가 이곳의 하늘과 그곳의 하늘이 겹쳐질 때, 우리는 말없이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기를. 종이비행기처럼, 가볍게 그러나 분명하게. 종이비행기는 돌아오지 않지만, 그리움은 매번 나를 다시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