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장|틈새

틈이 있다고 해서 모두 내 자리는 아니다

by Helia

추천 클래식

알렉산드르 타네예프 –
〈Prelude in D minor, Op. 29 No. 1 – Lento e sostenuto〉



틈새라는 말에는 언제나 착각이 함께 따라붙는다. 조금 벌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그 안쪽에 무엇이 있을 거라 쉽게 믿어버린다. 빛이 스며드는 것처럼 보이면 희망이라고 부르고, 바람이 지나가면 마음도 열릴 수 있을 거라 짐작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모든 틈이 길은 아니라는 것을. 어떤 틈은 그저 구조의 한계일 뿐이고, 어떤 틈은 들어오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한때 틈을 기회라고 불렀다. 단단히 닫히지 않은 태도, 애매하게 남겨진 말, 확답을 미루는 침묵을 가능성이라 오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틈을 넓혀보려 애썼고,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문이 열릴 거라 믿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신 나만 점점 더 얇아졌다. 기대는 얇아지고 자존은 닳아갔다. 틈을 향해 몸을 기울일수록, 나는 나 자신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다.
열릴 것 같지 않은 이의 마음을 어떻게든 열어보고자 빈틈을 찾아내려 애쓰는 일은, 생각보다 쉽게 자신을 소모시키는 선택이다. 문고리가 없는 문 앞에서 손을 허공에 휘두르듯, 애초에 들어갈 자리가 아니었던 곳에 이유를 만들어내는 일. 그건 용기가 아니라 집착에 가깝고, 사랑이라 부르기엔 너무 많은 자기 포기가 섞여 있다. 특히 그에게 이미 연인이 있다면, 그 틈은 더 이상 틈이 아니다. 이미 누군가의 온기가 채워진 자리라면, 그곳은 처음부터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집과 닮아 있다. 초대받지 않은 발걸음은 오래 머물 수 없고, 열어주지 않는 문은 끝내 열리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문이 닫힌 이유를 나에게서 찾는다. 내가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조금만 더 기다렸더라면. 그러나 모든 닫힘이 나의 부족에서 비롯되지는 않는다. 이미 자리가 찼기 때문에, 이미 누군가와 함께 있기 때문에, 더는 여지를 남기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닫힌 문도 있다. 그 문 앞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태도는, 두드리지 않는 것이다.
틈새는 남겨진 사람의 몫이 아니다. 그것은 만든 사람의 책임에 가깝다. 애매한 말로 기대를 남기고, 확답 없는 태도로 시간을 붙잡는 일은 다정함이 아니라 무책임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스스로를 설득하며 버틴다. 틈이 있다는 건 가능성이라는 말로. 하지만 가능성은 서로의 방향이 같을 때에만 성립한다. 한쪽만 기울어진 마음은, 아무리 오래 붙잡아도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
나는 이제 틈을 다르게 본다.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가야 할 공간이 아니라,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할 경계로. 그 틈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곳은 나를 환영하는 자리인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자리인가. 대답은 늘 몸이 먼저 안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들고, 자존이 먼저 아파온다면 그건 들어가선 안 되는 틈이다. 나를 작아지게 만드는 관계는, 아무리 이름을 붙여도 사랑이 될 수 없다.
놓아주는 것도 용기라는 말을 예전에는 쉽게 믿지 못했다. 놓는다는 건 패배처럼 느껴졌고, 돌아선다는 건 도망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물러나는 일은 결코 약함이 아니라는 것을. 내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담대함이 필요하다. 그 담대함은 상대를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나 자신을 더 이상 희생시키지 않는 선택에서 온다.
사랑은 틈을 공략하는 기술이 아니다. 마음의 빈자리를 노려 들어가는 게임도 아니다. 사랑은 서로의 문이 동시에 열리는 순간에만 가능하다. 한쪽이 잠겨 있다면, 다른 한쪽은 기다리는 대신 돌아설 수 있어야 한다. 그 선택이 늦어질수록 남는 건 사랑이 아니라 후회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틈을 기웃거리지 않기로 했다. 애매한 온기에 기대지 않고, 불확실한 말에 나를 맡기지 않기로 했다.
틈새는 여전히 존재한다. 삶에도, 관계에도, 마음에도. 그러나 그 틈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들어가려 애쓰는 대신 지나쳐 갈 수 있고, 메우려 애쓰는 대신 그대로 둘 수도 있다. 틈은 나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신호다. 그 신호 앞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만이, 다음 문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다.
결국 내가 선택한 답은 단순하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나를 잃지 않는 것. 이미 누군가의 사람이 된 마음 앞에서 물러날 줄 아는 것. 틈이 있다고 해서 모두 내 자리는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 깨달음 하나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제야 알겠다. 진짜 내 자리는,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틈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