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는 점점 사라졌다

by Helia

장례식장은 늘 사람의 관계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소다. 검은 옷의 물결 속에서 누군가는 끊임없이 손을 맞잡고, 누군가는 끝내 맞잡을 손을 찾지 못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보내던 날, 언니의 곁에는 조문객이 쉼 없이 드나들었고, 위로의 말들은 줄을 섰다. 반면 내 앞에는 조용한 공기만이 앉아 있었다. 부르지 않았기에 오지 않았고, 오지 않았기에 더 묻지 않았다. 그날의 정적은 유난히 또렷해서, 슬픔보다 먼저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스무 살부터 삼십 대 초반까지, 나는 사람의 수를 삶의 온도로 착각하며 살았다. 친구가 많다는 건 인생이 잘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보였고, 약속으로 가득 찬 달력은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훈장 같았다. 웃음이 많은 테이블, 단체 채팅방의 알림, 주말마다 이어지는 만남들. 그 풍경이 부러워 고개를 돌릴 때마다, 내 주변은 늘 한 박자 느리게 비어 있었다. 그 빈자리를 인정하는 대신, 언젠가는 채워질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누나는 친구도 하나 없느냐고, 인생을 잘못 산 것 같다고. 나는 연락을 굳이 하지 않았을 뿐이라며 말을 흘려보냈다. 그 순간의 표정과 어조를 아직도 기억한다. 웃음은 입술에만 걸렸고, 마음은 속으로 주저앉았다. 괜찮다고 넘겼지만, 괜찮지 않았다. 사람의 수로 삶을 재단하는 말은 생각보다 날카로웠다. 그날 이후로 한 가지 질문이 자꾸 되돌아왔다. 친구가 많은 게 정말 좋은 걸까.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잘못 살아온 걸까.
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점검하듯 지난 관계들을 하나씩 되짚었다. 웃던 장면, 약속을 미루던 순간, 지나치게 참았던 말들. 그러다 깨달았다. 나는 관계를 잃는 게 두려워서, 나 자신을 조금씩 접어 넣고 있었다는 걸. 친구라 믿었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다른 얼굴로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 깨달음은 더 선명해졌다. 함께 나눈 말들이 뒤에서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나의 이름은 내가 없는 자리에서 가볍게 소비되고 있었다. 험담이라는 단어는 그날 처음으로 피부에 닿았다. 소문은 얇았지만 상처는 깊었다.
그때부터 나는 줄을 끊기 시작했다. 오래갈 거라 믿었던 인연일수록 가위질은 조심스러웠다. 추억이 걸려 있었고, 시간이라는 매듭이 단단했다. 하지만 미루면 더 아플 것 같았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존중이 사라졌다면, 더 붙잡는 건 미련이었다. 손절이라는 단어는 차갑지만, 그 선택 뒤에 남은 감정은 의외로 따뜻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변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손에 쥐어졌다.
관계가 줄어든 뒤, 밤은 길어졌다. 연락창은 조용해졌고, 휴대폰의 알림은 간헐적으로만 울렸다. 처음엔 그 적막이 낯설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혼자 남겨졌다는 감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고요는 생각보다 견딜 만했다. 소음이 사라진 방처럼, 내 생각이 또렷해졌다. 말의 양이 줄어들자 말의 무게가 느껴졌고, 만남의 빈도가 낮아지자 만남의 이유를 묻게 되었다. 숫자보다 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몸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친구를 ‘많이’ 갖는 삶을 상상하지 않는다. 대신 ‘맞게’ 두는 삶을 떠올린다. 관계는 넓이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라는 걸, 깊이는 서로를 내려다보지 않을 때 생긴다는 걸 배웠다. 손을 뻗지 않아도 닿는 거리, 침묵이 불편하지 않은 시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남는 순간들. 그런 장면이 하나만 있어도 하루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오지 않은 사람들의 숫자보다, 곁에 앉아 아무 말 없이 등을 토닥이던 한 사람의 온기가 훨씬 오래 남았다.
물론 여전히 흔들릴 때가 있다. 사회는 여전히 관계를 성과처럼 평가하고, 사람의 가치를 연결망의 크기로 재단한다. 명함 속 이름의 개수, 저장된 번호의 길이로 인생을 가늠한다. 그 기준 앞에서 나는 종종 작아진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관계는 과시가 아니라 생활이라는 것을. 삶의 정면이 아니라 옆면에 조용히 붙어 있어야 오래간다는 것을. 누군가의 인생을 통과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고, 나의 방식은 다소 고요할 뿐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인간관계를 내가 가지지 못한 목록으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대신 선택의 기록으로 바꿔 적는다.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지켰는지로 나를 설명한다.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나를 잃는 대신, 나를 지키기 위해 몇몇 사람을 떠나보냈을 뿐이다. 그 선택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거짓은 아니다.
이제 다시 묻는다. 친구가 많아야 인생이 풍성해지는 걸까. 아니면 적어도 나를 해치지 않는 관계 몇 개면 충분한 걸까. 나는 후자를 택했다. 인간관계는 소유물이 아니라 흐름이다. 붙잡을수록 미끄러지고, 놓아줄수록 제자리를 찾는다. 이 고요한 흐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 하나로, 오늘의 인간관계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