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아직 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살아 있다

by Helia

나는 이 작품에서 고도를 ‘죽음’이라고 읽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고도를 기다리면은 더 이상 난해한 연극도, 허무를 과시하는 작품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이야기는 끝까지 살아 있으려 애쓰는 인간에 대한 기록처럼 보였다.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그 깨달음은 책을 덮은 뒤 한참이 지나서야 찾아왔다. 읽고 있는 동안에는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남았다.
이 작품을 처음 읽은 건 꽤 오래전이다. 정확한 시점도, 당시의 감정도 흐릿하다. 줄거리를 다시 설명하라면 자신이 없고, 인물의 이름조차 선명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이야기가 끝난 뒤 마음 한구석에 설명되지 않는 정적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많은 것이 지나간 느낌.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은 채, 시간 속에서 천천히 숙성되다가 어느 날 문득 ‘고도는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작품 속 인물들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은 기다리는 동안 온갖 일을 한다. 말다툼을 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사소한 행동을 반복한다. 그 행위들은 목적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분명한 목적을 가진다. 바로 스스로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고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절망이 아니라 조건이다.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다. 만약 고도가 죽음이라면, 그들이 보내는 모든 시간은 죽음 이전의 시간, 즉 삶 그 자체가 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그들의 기다림은 무기력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시간을 채운다. 의미 없는 말과 행동으로 공백을 메우며, 침묵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버틴다. 기다림은 정지된 상태가 아니라, 붕괴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움직임이다. 살아 있다는 감각은 대개 이런 방식으로 유지된다.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고도가 오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이 연극이 왜 그렇게 끝을 유예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기다림이 삶의 목표라면, 고도가 도착하는 순간 그 목표는 완성된다. 그리고 목표가 완성된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이유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고도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오지 않음으로써, 삶은 계속된다. 인물들은 고도를 기다리지만, 동시에 고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존재처럼 보인다. 그 모순된 태도야말로 인간의 가장 솔직한 얼굴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주어진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도 이 해석 안에서 또렷해진다. 이미 그들은 삶이라는 하나의 틀 안에 놓여 있다. 그 틀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에 가깝다. 떠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떠날 수 없는 상태. 무대를 벗어난다는 것은 이야기에서 사라지는 일과 같다. 그래서 그들은 늘 같은 장소에 머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변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변화가 곧 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자살이 끝내 실행되지 않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목을 맬 수 없는 이유는 용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고도 자체가 죽음이라면,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죽음은 이미 하나로 정해져 있다. 고도가 오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그 결말을 앞당길 수 없다. 삶은 그들에게 선택지가 아니라 필연이다. 살아 있음은 의지가 아니라 상태이고, 기다림은 그 상태를 유지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이렇게 읽고 나니,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제목이 비로소 분명해진다. 기다린다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행위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기다린다. 다음 날을, 다음 계절을, 다음 기회를, 다음 결말을. 기다림은 미래를 향한 태도이자, 현재를 견디는 기술이다. 그렇다면 고도를 기다린다는 것은 인간이 끝내 도달하게 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살아간다는 말과도 닮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목표는 삶의 끝자락에 놓여 있다.
물론 고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성공이고, 누군가에게는 구원이며, 누군가에게는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는 죽음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고도의 정체보다, 그것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가이다.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집요할 만큼 단순한 방식으로 던진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어떤 ‘오면 달라질 것 같은 순간’을 기다리며 산다. 그 순간이 오면 움직이겠다고, 그때가 되면 결심하겠다고 말하면서 오늘을 미룬다. 하지만 그 순간이 실제로 도착했을 때, 과연 삶은 계속될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은 고도가 오기 전까지만 유효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 삶 역시 함께 막을 내린다.
그래서 이 작품은 허무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집요하게 삶을 붙든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행동들, 끝없이 반복되는 대화들, 진전 없는 하루들 속에서 인간은 계속 존재한다.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인간은 하루를 살아내고 또 하루를 기다린다. 그 반복이야말로 삶의 가장 솔직한 형태다.
다 읽고 나서야 나는 이 작품이 묻고 있었던 질문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고도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나는 무엇을 고도라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기다림이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라면, 고도는 삶이 끝나는 지점에 놓인 하나의 표식일 뿐이다. 그것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서 최대한 살아 있는 척을 하며 버틴다.
고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삶은 계속된다.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도 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면서.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삶이 된다. 그렇다면 이 기다림만큼은, 쉽게 부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끝은 정해져 있다면, 그전까지는 충분히 기다려도 괜찮을 것 같다. 기다림 속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가능한 오래 붙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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