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행복한 결혼:숨을 고르게 해 준다는 것
나의 행복한 결혼은 다정한 영화가 아니다. 대신 다정함이 얼마나 늦게 도착하는지를 끝까지 보여주는 영화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보고 난 직후보다, 며칠이 지난 뒤 더 선명해진다. 울음을 재촉하지도 않고, 감정을 크게 흔들지도 않는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오래 조용하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의 창문을 조금 열어둔 채로 외출했다가 돌아온 느낌처럼, 공기는 바뀌어 있고 이유는 정확히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이 영화의 주인공 미요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의 문턱에서 밀려난 사람이다. 폭력적인 말보다 더 잔인한 무관심 속에서 자라난 얼굴을 하고 있다. 늘 고개가 숙여져 있고, 말보다 사과가 먼저 나온다. 존재를 드러내면 혼나는 법부터 배운 사람의 몸짓은 자연스럽게 작아진다. 그녀는 슬퍼 보이기보다 익숙해 보인다. 그래서 더 아프다. 우리는 저런 얼굴을 알고 있다. 적어도 한 번쯤은, 저렇게 숨을 줄이며 하루를 통과해 본 적이 있으니까.
미요의 삶에서 가장 큰 비극은 미움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기대조차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못해도 설명할 기회가 없다. 감정은 표현되기 전에 접히고, 마음은 늘 먼저 사라진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미요가 서 있는 위치, 밥을 먹는 속도, 말을 끝맺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순간 그녀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닮아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키요카 쿠도는 전형적인 구원자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차갑고 무뚝뚝하며,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소리를 높이지 않고, 이유 없는 모욕을 하지 않으며, 말을 걸기 전 한 박자를 둔다. 이 ‘한 박자’가 미요의 세계를 바꾼다. 사랑이 오기 전, 존중이 먼저 도착하는 경험. 이 영화에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은 고백도, 포옹도 아니다. 누군가의 말을 끝까지 기다려주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영화의 사랑은 불꽃이 아니라 온도에 가깝다. 눈에 띄게 타오르지 않고, 어느새 차갑지 않게 변해 있다. 미요는 갑자기 밝아지지 않는다. 대신 조금 덜 움츠러든다. 말의 끝이 흔들리지 않고, 숨이 길어진다. 초반의 그녀는 늘 급하게 숨을 쉰다. 언제든 사과해야 할 것처럼, 항상 잘못된 사람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그 호흡이 안정된다. 사랑이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사건이 아니라, 숨을 고르게 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영화의 화면은 이 감정을 과장하지 않는다. 색은 차분하고, 빛은 절제되어 있다. 판타지적 설정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시선은 늘 사람에게 머문다. 전투보다 식탁이, 능력보다 일상이 더 오래 비친다. 밥그릇을 내려놓는 손, 문을 여닫는 소리, 차를 따를 때의 미세한 떨림 같은 장면들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보여주기보다 머무르게 한다. 관객은 이야기를 ‘본다’기보다, 그 집 안에 잠시 살다 나온 기분이 된다.
전개는 느리다. 갈등은 한꺼번에 폭발하지 않고, 감정은 차곡차곡 쌓인다. 이 느림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이 회복되는 속도는 원래 이렇다. 단숨에 괜찮아지는 삶은 없고, 하루아침에 단단해지는 마음도 없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서두르지 않는다. 그래서 미요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장면은 극적인 연출 없이도 충분히 깊다. 그녀의 변화는 커다란 결심이 아니라, 작은 허락에서 시작된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자신에게 허락하는 일.
미요가 강해지는 방식은 더욱 인상 깊다. 그녀는 누군가를 이기지 않는다. 세상을 뒤집지도 않는다. 대신 자기 자신을 조금씩 용서한다. 그동안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 말들, 당연하게 여겼던 모욕들을 다시 바라본다. ‘내가 잘못해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가 사람을 얼마나 멀리 데려가는지, 이 영화는 조용히 증명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아주 현실적이다. 우리가 현실에서 바라는 기적 역시 대부분 이런 모양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행복한 결혼’이라는 말이 처음엔 아이러니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하는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결혼은 목적이 아니라, 숨 쉴 수 있게 된 사람의 삶에 자연스럽게 놓인 다음 장면에 가깝다. 미요에게 중요한 건 누군가의 아내가 되는 일이 아니라, 더 이상 스스로를 벌주지 않아도 되는 하루다.
이 영화는 화려한 로맨스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조용할 수 있다. 하지만 한때 이유 없이 작아져야 했던 사람, 사랑보다 먼저 존중을 배워야 했던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다. 다 보고 나면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는다. 대신, 다음 날 아침 숨이 조금 편해진다. 그 변화가 작아서 더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행복하다’고 말하기보다, ‘덜 아프다’고 기억하고 싶다. 아픔이 줄어든 자리에서야 비로소, 행복은 조용히 앉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