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남겨진 목소리

그는 말보다 늦게, 목소리로 남아 있었다

by Helia

아침은 창밖의 소음부터 들이밀고 들어왔다.

신호등이 바뀌는 소리,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는 소리, 아래층 현관문이 닫히며 흔들린 공기.

세상은 어젯밤을 모른 척했다.

해윤은 바닥에 누운 채 눈만 뜨고 있었다.

천장이 낯설게 멀었다. 밤새 바닥이 받아주던

감촉이 아직 피부에 남아 있었고, 말라붙은

눈물이 뺨을 얇게 당겼다.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관자 쪽이 가볍게 욱신했다. 어제처럼 찢어질 듯하지는 않았다.

대신 오래된 멍처럼 은근했다.

잊지 말라는 표시처럼. 해윤은 숨을 들이마셨다가

잠시 멈췄다. 공기가 목에 걸렸다가 겨우 내려갔다. 울음은 한 번 터지면 끝나는 불이 아니었다.


꺼진 자리에서 다시 연기가 올라오는 방식이었다.
손끝으로 바닥을 짚고 천천히 상체를 세웠다.

머리가 잠깐 기울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해윤은 벽에 등을 기대었다. 멈추지 않는다는 건 앞으로 달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질 때 바로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 일이라는 걸

그녀는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다.

시야가 조금씩 또렷해지자 방의 윤곽이 돌아왔다.

책상 모서리, 커튼 끝의 실밥, 바닥의 미세한 균열.

사소한 것들이 이곳이 여전히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얼굴은 낯설었다.

눈 아래는 붉었고 속눈썹에는 마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해윤은 수도를 틀어 손에 물을 받았다.

차가운 물이 손바닥을 적셨다. 정확한 온도였다. 얼굴을 씻는 동안 어제의 장면이 밀려오지 않기를 바라지 않았다. 바라지 않는다는 건 포기와 달랐다.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마음에 가까웠다. 컵에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아무 맛도 없는 물이 혀를 지나갔다.

무미함이 오히려 확실했다. 아직 살아 있고,

아직 오늘이 남아 있다는 증거처럼.
방으로 돌아오자 책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어제 손끝으로 붙잡았던 가장자리.

그 감촉이 다시 손바닥에 떠올랐다.

해윤은 서랍을 열었다.

맨 아래 칸에 오래된 노트가 있었다.

누렇게 변한 종이, 닳은 모서리.

마음이 오래 접혀 있던 자국 같았다.

노트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덮개를 열지 않았다. 열었다가 무너지면 오늘은 끝날 것 같았고,

열지 않으면 오늘이 시작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녀는 노트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온도. 현실의 온도였다.
핸드폰이 진동했다. 광고 알림이었다.


“오늘만 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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