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장|시를 쓰며

울지 않기 위해 적는 숨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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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vent dans la plaine (Préludes, Livre I No.3) – Claude Debussy


겨울바람이 유리창을 스칠 때마다 방 안의 온도는 조금씩 내려가고, 그때마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 숨을 내쉴 때마다 허옇게 번지는 입김처럼, 마음속 말들도 가만히 두면 흐려지고 사라질 것 같아서, 나는 그 입김이 완전히 공기 속으로 흩어지기 전에 서둘러 붙잡는다. 한 줄 한 줄 마음을 고르고 골라, 급하지 않게, 그러나 놓치지 않게 써 내려간 숨으로 시를 쓴다. 그 숨은 체온보다 낮고, 눈물보다 먼저 식어버리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겨울은 늘 그렇게 사람을 말없이 시험한다. 견딜 수 있는지 묻지 않고, 견디고 있는지를 확인한다. 나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종이를 꺼내 든다.

시를 쓰는 시간은 대체로 조용하다. 난방이 꺼진 새벽, 손끝이 굳어 키보드가 낯설게 느껴질 때, 창밖에서는 바람이 눈을 밀어붙이고, 방 안에서는 시계 초침이 유난히 크게 울린다. 그 소리 사이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진짜 속도를 찾는다. 세상은 늘 더 빨리 말하라고, 더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재촉하지만, 시는 서두르지 않는 쪽을 택하라고 말한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말의 가장자리부터 만져보라고. 그렇게 만진 단어들은 대개 화려하지 않다. 대신 차갑고, 건조하고, 손에 남는 감촉이 분명하다. 나는 그 감촉을 믿는다. 시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을, 손에 잡히는 언어로 바꾸는 일이라서.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왜 굳이 시를 쓰느냐고. 요즘 같은 세상에, 길고 복잡한 말보다 짧고 즉각적인 문장이 더 환영받는 시대에, 왜 이렇게 돌아가는 길을 택하느냐고.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솔직해진다. 시를 쓰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참아온 감정들은 설명되지 않은 채 쌓이면,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나는 그 폭발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미리,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종이 위에 흘려보낸다. 시는 나에게 감정의 배출구다. 동시에 감정을 다치지 않게 다루는 방법이다.

그리움은 특히 다루기 까다로운 감정이다. 너무 오래 품으면 스스로를 잠식하고, 너무 쉽게 꺼내면 값싸게 소비된다.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시를 쓴다. 겨울바람의 입김처럼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넘치지 않게, 흘러내리지 않게. 눌러두지 못한 그리움은 결국 눈물이 되어 사무친다. 그래서 나는 울기 직전에 멈춰 서서 문장을 적는다. 눈물이 떨어질 자리에 단어를 놓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감정은 울음이 아니라 문장으로 형태를 바꾼다. 시는 그렇게 눈물의 방향을 틀어준다. 아래로 흐를 것을 옆으로 흘려보내, 나를 조금 덜 무너지게 만든다.

시는 생각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는 아주 사소한 장면에서 태어난다. 컵에 남은 미지근한 물, 벗어둔 코트에서 묻어나는 차가운 공기, 휴대폰 화면에 남아 있는 읽지 못한 이름 하나. 그런 것들은 설명할 가치가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을 오래 붙잡는다. 나는 그 붙잡힘을 신뢰한다. 삶이 건네는 신호는 늘 소란스럽지 않아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쳐버리기 쉽다. 시를 쓴다는 건 그 신호에 유난히 민감해지는 일이다. 남들이 무심히 넘긴 장면에 발걸음을 멈추고, 왜 멈췄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그 질문에 답하려다 보면, 문장은 저절로 생겨난다.

처음에는 나도 시가 멋진 말들의 집합인 줄 알았다. 비유를 쌓고, 감탄사를 얹고, 읽는 사람을 놀라게 하면 좋은 시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시는 더하기보다 빼기에 가깝다는 것을. 하고 싶은 말을 다 적는 대신,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지우는 용기. 감정을 전부 드러내는 대신, 감정의 가장자리만 남겨두는 절제. 그 여백에서 독자는 자신의 마음을 꺼내 놓는다. 시는 쓰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읽는 사람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나는 그 교차점이 좋다. 나의 겨울이 누군가의 겨울과 잠시 겹쳐지는 순간, 그때 시는 혼자가 아니다.

시를 쓰며 가장 많이 배우는 건 솔직함보다 정확함이다. 슬프다는 말은 쉽지만, 어떤 슬픔인지 밝히는 건 어렵다. 추운 슬픔인지, 젖은 슬픔인지, 오래된 슬픔인지. 나는 그 차이를 구분하려 애쓴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그 과정은 편안하지 않다. 피하고 싶은 기억을 다시 꺼내야 하고, 외면했던 마음과 마주해야 한다. 그래도 시는 타협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충 넘기려 하면 문장은 금세 힘을 잃는다. 결국 나는 다시 돌아와, 마음의 정확한 위치를 찾는다. 그곳에 단어를 놓는다. 그러면 비로소 문장은 숨을 쉰다.

시를 쓰는 날과 쓰지 않는 날의 차이는 분명하다. 쓰지 않는 날에는 감정이 안에서 서로 부딪혀 소음을 낸다. 괜찮은 척한 말들이 뒤엉켜 밤늦게까지 나를 괴롭힌다. 반면 시를 쓴 날에는 마음이 한 번 걸러진 느낌이 든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된다. 시는 해결책을 주기보다, 질문을 정리해 준다. 그 질문 덕분에 나는 다음 날을 조금 더 차분히 맞이한다. 그래서 시는 내게 취미라기보다 생활에 가깝다. 씻지 않으면 몸이 불편해지듯, 쓰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또 시는 말의 무게를 잊지 않게 한다. 빠르게 소비되는 말들 사이에서, 시는 한 단어를 오래 붙잡게 만든다. 이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닿을지, 어떤 상처를 건드릴지, 혹은 어떤 밤을 견디게 할지 생각하게 한다. 그 생각은 나를 조심스럽게 만든다. 조심스러움은 때로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 덕분에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덜 다치게 할지도 모른다. 시를 쓰며 나는 말이 가진 책임을 배운다. 아무 말이나 할 수 있지만, 아무 말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시를 쓰는 시간은 혼자 있는 연습이기도 하다. 혼자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면,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시는 그 목소리를 찾도록 강요한다. 문장 앞에서는 변명도, 포장도 통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느꼈는지,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나는 계속 질문받는다. 그 질문에 답하다 보면, 싫어했던 나의 모습에도 사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시는 나를 비난에서 이해로 데려간다. 이해는 곧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물론 늘 좋은 시가 나오는 건 아니다. 어떤 날은 단어들이 돌처럼 굴러다니고, 어떤 날은 내가 쓰는 문장이 너무 얄팍하게 느껴져 손을 떼고 싶어진다. 그럴 때 나는 억지로 멋진 시를 쓰려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적는다. 메마르면 메마른 대로, 서투르면 서투른 대로. 시는 완벽함보다 진실에 가까운 장르라고 믿기 때문이다. 완성은 나중에 와도 되지만, 진실은 지금 붙잡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마음을 오늘의 언어로 남긴다.

시를 쓰면 세상의 속도가 조금 느려진다. 그냥 지나치던 풍경이 문장이 되고, 무심히 흘려보낸 감정이 의미를 얻는다. 그 느려짐 속에서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된다. 오늘 내가 사실 외로웠다는 것, 그 말이 꽤 아팠다는 것, 괜찮은 척했지만 괜찮지 않았다는 것. 그런 진실들은 빠른 일상에서는 늘 뒤로 밀린다. 시는 그 마음들을 앞으로 불러낸다. 여기 있어도 된다고, 너를 무시하지 않겠다고 말해준다. 감정이 환대받는 순간, 사람은 조금 덜 거칠어진다.

나는 시가 나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든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시는 나를 덜 무디게 만든다. 무뎌지는 건 편하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는다. 감동하는 능력, 미안해하는 마음, 조심하는 태도. 시는 그런 감각들을 지켜준다. 그 결과는 대단하지 않다. 누군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는 것, 상처를 농담으로 덮지 않는 것, 늦은 답장에 미안함을 적는 것. 시가 내게 준 변화는 그렇게 작고 일상적이다. 그러나 그 작은 태도들이 모여, 하루를, 삶을 만든다.

결국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금세 사라지는 온기, 말끝에 매달린 진심, 겨울밤에 스며드는 고요. 그것들은 사진으로도, 기억으로도 완전히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시로는 잠시, 아주 잠시 손끝에 걸어둘 수 있다. 시는 도망치는 시간을 붙잡는 그물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가며 남긴 흔적을 조심히 담는 작은 병 같다. 나는 그 병에 오늘의 숨을 담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추운 날, 마음이 시릴 때 그 병을 열어본다. 그때 나는 알게 될 것이다. 한 줄 한 줄 마음을 고르고 골라 써 내려간 숨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