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다
추천 클래식
Laconisme de l’aile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지치는 걸까 생각해 보면, 대개 이유는 하나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다정했다가 냉담해지고, 가까이 오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멀어진다. 어제는 분명 웃으며 건넨 말이었는데, 오늘은 그 말이 없던 일이 된다. 무슨 놈의 변덕이 제집 드나들듯 그런다니. 문도 안 두드리고 마음을 들락날락한다. 장난처럼 굴지만, 그 장난은 늘 같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태도에는 묘하게 잔인한 구석이 있다. 분명히 선을 긋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손을 놓지도 않는다. 기대하게 만들고, 그 기대가 자리 잡을 즈음 슬쩍 발을 뺀다. 다가오는 듯하다가 뒤돌아서고, 설명은 생략한 채 태도만 바꾼다. 그러면 남겨진 쪽은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방금의 말이 거슬렸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질문은 늘 나에게로 돌아온다. 상대의 변덕은 언제나 나의 반성이 된다.
왜 네 변덕을 내가 맞춰줘야 하느냐고 묻고 싶어도, 그 말은 자주 삼켜진다. 괜히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분위기를 망치는 쪽이 될까 봐. 그래서 또 한 번 참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바뀌는 기분에 맞춰 내 얼굴을 고치고, 말을 줄이고, 타이밍을 잰다. 어느새 관계는 두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컨디션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가 된다. 그 안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상대는 점점 편해진다.
변덕은 늘 사소한 변화로 시작된다. 답장이 빨랐다가 느려지고, 약속이 확실했다가 흐려진다. 말끝이 부드럽다가 날이 서고, 관심이 있다가 없는 사람이 된다. 문제는 그 변화가 설명 없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설명 없는 태도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불안은 관계를 갉아먹는다. 마음은 늘 긴장 상태가 되고, 긴장은 피로로 쌓인다. 피로가 쌓이면 감정은 마모된다. 좋아하던 마음조차 닳아 없어질 만큼.
이랬다가 저랬다가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건 책임의 부재에 가깝다. 감정이 바뀌는 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태도까지 흔들리는 건 다른 이야기다. 마음이 달라졌다면 말해야 하고, 거리가 필요하다면 알려야 한다. 아무 말 없이 태도만 바꾸는 건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선택이다. 그 선택의 비용은 늘 한쪽이 감당한다. 혼란과 불안,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죄책감까지.
혹시 당신도, 상대의 기분이 오늘은 어떤 지부터 살피느라 하루의 절반을 쓰고 있지는 않은가. 말을 꺼내기 전 눈치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기 전 머뭇거리며, 혹시 또 변덕이 돌아올까 마음을 접어두고 있지는 않은지. 이랬다가 저랬다가는 그렇게 사람의 일상을 조금씩 잠식한다. 관계가 쉬는 곳이 아니라 긴장하는 공간이 되는 순간, 이미 무언가는 어긋나 있다.
변덕스러운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원래 내가 좀 그래, 솔직한 편이야, 감정에 충실한 거지. 하지만 솔직함과 무책임은 다르다. 감정에 충실하다는 건 자신의 상태를 알고, 그 변화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인식하는 일이다. 아무 말 없이 태도를 바꾸는 건 솔직함이 아니라 방치다. 방치는 관계를 가장 빠르게 망가뜨리는 방식이다. 변덕은 이해받을 수 있어도, 반복되면 무례가 된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태도는 감정 문제가 아니라 인격 문제다. 상대를 한 사람으로 대하는지, 아니면 자신의 기분을 받아주는 완충재로 여기는지의 차이다. 오늘은 필요하고 내일은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순간, 관계는 이미 평등을 잃는다. 한쪽은 자유롭고, 다른 한쪽은 늘 조심스럽다. 조심스러움이 쌓이면 솔직함은 사라지고, 솔직함이 사라지면 관계는 껍데기만 남는다.
이랬다가 저랬다가를 오래 견딘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이 정도는 다 참고 사는 건가.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태도는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다. 이해는 서로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변덕을 받아주는 일은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상대의 기분에 따라 나의 하루가 결정되는 관계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사랑도, 호의도, 관계도 일관성 위에서 자란다. 마음은 흔들릴 수 있어도 태도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말이 내일 부정되지 않고, 다가왔으면 이유 없이 밀어내지 않는 것. 그건 거창한 요구가 아니라 최소한의 존중이다. 사람을 헷갈리게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은 사랑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대해 달라는 요청에 가깝다.
이랬다가 저랬다가는 결국 신뢰를 갉아먹는다.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기억이 있어도 관계는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설명 없는 변덕 앞에서 계속 이해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걸. 그 변덕에 이유를 붙이며 나를 설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의 감정은 누군가의 기분 변화를 감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사람은 누구나 흔들린다. 하지만 흔들림을 핑계로 타인을 흔들 권리는 없다. 이랬다가 저랬다가는 가볍게 넘길 말이 아니다. 그 말속에는 수없이 무너진 마음과, 혼자서 견뎌온 시간들이 들어 있다. 이제는 그 시간을 스스로 거두기로 한다. 변덕에 맞춰 나를 바꾸는 대신,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다.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