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보다 먼저 도착한 선택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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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x Balaenae – I. Vocalise (…for the beginning of time) (1971)
당선이라는 말은 늘 문장보다 먼저 심장을 친다. 읽히기 전에 이미 몸이 반응한다. 기쁜지, 무서운지, 믿어도 되는지 판단하기도 전에 심장이 먼저 뛰고 손이 먼저 떨린다. 비용이 들어갈 거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다음에야 떠올랐다. 나는 그날도 전화를 끊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축하합니다,라는 말은 짧았고, 그 뒤에 따라붙은 안내는 길었다. 몇 시까지 입금을 해야 하고, 어떤 절차가 있고, 어떤 순서로 일이 진행된다는 말들. 그 말들 사이에서 나는 내 글이 아니라 내 통장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글이 당선됐다는 사실보다 숫자가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게 가능할까, 감당할 수 있을까, 무너지지 않을까.
당선은 늘 기쁨으로만 올 거라 생각했다. 기뻐할 시간도, 기뻐해도 되는 여유도 함께 주어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날의 당선은 너무 빨리 생활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문장이 아니라 조건으로, 인정이 아니라 절차로. 글이 좋았다는 말보다 언제까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가 먼저였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이 세계에서는 기쁨조차 준비되지 않으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당선이라는 말이 내 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하나의 통보처럼 들렸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종종 이런 순간에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정말 원했던 게 이거였나 하고. 글을 쓰며 바라던 건 인정이었는지, 아니면 증명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누군가가 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순간이었는지. 당선이라는 말은 그 모든 질문을 한꺼번에 꺼내 놓는다. 기쁨과 함께 책임을 데려오고, 기대와 함께 조건을 데려온다. 그 조건이 숫자로 바뀌는 순간, 글은 갑자기 생활의 영역으로 내려온다. 종이 위의 문장이 아니라, 현실의 선택이 된다. 나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계산을 했다. 엄마가 준 돈이 있었고, 통장에 남아 있는 돈이 있었고, 적금을 해약하면 생기는 돈이 있었다. 더하면 가능했고, 덜어내면 불안했다.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가능하다는 말과 괜찮다는 말은 같지 않았다. 상금으로 일부가 돌아온다는 말은 잠시 나를 흔들었다. 완전히 잃는 건 아니니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한 문장에 가까웠다. 이미 써버릴 돈을 아직 오지 않은 돈으로 덮어두는 방식. 글을 쓰면서는 한 번도 그렇게 나를 밀어붙여본 적이 없었는데, 글 밖으로 나오자 나는 숫자를 근거로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무서웠다. 이걸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이 아니면 언제 또 당선이 될까,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글은 늘 나에게 기다림을 요구했지만, 기회는 늘 나에게 결정을 요구했다. 기다리는 법은 알았지만, 이렇게 급하게 선택하는 법은 잘 몰랐다. 특히 돈이 얽힌 선택 앞에서 나는 늘 작아졌다. 글은 나를 크게 만들었지만, 생활은 여전히 나를 눌렀다. 작가라는 말보다 생활인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르는 순간마다, 나는 괜히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사주를 떠올렸고, 운을 떠올렸고, 타이밍이라는 말을 붙잡았다. 그건 미래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지금의 불안을 누군가 대신 책임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네가 부족한 게 아니야, 이건 그냥 때가 그런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아무것도 대신 결정해주지 않았다. 사주도, 운도, 시간도. 남은 건 여전히 나 하나였고, 그 사실이 오히려 나를 정직하게 만들었다.
당선이라는 말 뒤에는 늘 선택이 따라온다. 그 선택이 늘 영광스러운 건 아니다. 어떤 선택은 포기와 닮아 있고, 어떤 선택은 도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용 때문에 참여를 고사한다는 결정은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그 말 한 줄을 꺼내기까지 나는 여러 번 문장을 고쳤고, 여러 번 마음을 접었다 폈다. 이 선택이 나를 뒤로 밀어내지는 않을지, 기록으로 남아 나를 규정하지는 않을지,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오래 고민한 끝에 나는 아주 단순한 질문 하나에 도달했다. 이 선택을 하고도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선택을 하고도 나는 다시 글 앞에 앉을 수 있을까.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오래 멈췄고, 오래 멈춘 끝에야 대답할 수 있었다. 글은 다시 쓸 수 있지만, 나를 한 번 무너뜨리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 내가 붙잡은 건 글이 아니라 나였다. 당선이 취소되면 어떡하지, 기록에 남으면 어떡하지, 다시는 기회가 안 오면 어떡하지. 그 모든 걱정 끝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보게 되었다. 아직 이 글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아직 나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발표되지 않은 글은 여전히 나의 것이고, 쓰는 사람은 여전히 나라는 사실. 그 단순한 진실이 생각보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당선은 취소될 수 있지만,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은 취소되지 않는다.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여러 번 되뇌었다. 오늘의 선택이 내 글 전체를 부정하지는 않을 거라고, 오히려 나를 지키는 선택일 수도 있다고. 글은 결국 내가 살아 있는 방식과 닮아야 오래간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기 전에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인사를 길게 하지 않았다. 사과를 반복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금은 참여하기 어렵다는 말만 남겼다. 축하의 말이 없었던 통화처럼, 나의 마무리도 담담했다. 그 말 뒤에 남은 허전함은 분명 있었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숨이 조금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 글을 세상에 내보내지 않지만, 언젠가는 다른 얼굴로, 다른 지면으로, 더 편안한 방식으로 나갈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확신이 남았다.
당선은 도착이 아니라 통과다. 나는 이제 그 말을 조금 믿게 되었다. 통과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다음 문을 어디서 열지, 언제 열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일은 늘 불확실하지만, 쓰는 사람으로 남는 일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어쩌면 당선보다 더 어려운 건, 나를 해치지 않는 선택을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그 단단함을 조금 확인했다. 그것으로 충분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