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장|그 여름날의 별들이 사무치게 아려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여름인데, 마음만은 계속 아팠다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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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날의 별들이 사무치게 아려왔다. 아무 일도 없었던 여름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큰 사건도, 극적인 이별도, 누군가를 잃은 일도 없었다. 낮은 늘 비슷했고,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름을 견디고 있었고,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만은 계속 아팠다. 이유를 묻기에는 너무 사소했고,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통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여름을 ‘아무 일도 없었던 여름’으로 분류해 두고 지냈다. 별을 올려다보기 전까지는.

여름의 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낮 동안 쌓인 열기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해 공기는 무겁고,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피부에 눅눅하게 들러붙는다. 창문을 열어두면 멀리서 매미 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는 밤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나는 불을 끄고 방바닥에 누워 천장을 보다가, 잠이 오지 않으면 휴대폰을 뒤집어 놓곤 했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계속 들여다보는 건 생각보다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문득 창밖이 밝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들면, 그 여름의 별들이 있었다.

그해 여름의 별들은 유난히 또렷했다. 도시의 불빛 사이에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제 존재를 끝까지 주장하는 것처럼 반짝였다. 보통이라면 아름답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밤의 별들은 사무치게 아렸다. 눈이 부셔서가 아니라, 가슴 한쪽을 콕 집어 누르는 것처럼 은근한 통증이 번졌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별을 보고 있으면 자꾸만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픈 걸 알면서도 계속 눌러보게 되는 멍처럼, 나는 그 빛을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여름은 많은 것들이 끝나 있었고, 동시에 아무것도 분명하게 시작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관계는 애매한 거리에서 멈춰 있었고, 말하지 못한 마음들은 제때 흘러가지 못한 채 안쪽에서 고여갔다. 괜찮은 척 웃고, 별일 없는 척 하루를 보내는 데는 점점 능숙해졌지만, 그럴수록 밤이 더 힘들어졌다. 낮에는 충분히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밤하늘 앞에서는 그 자신감이 쉽게 무너졌다. 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침묵 앞에서 내 상태를 정확히 들켜버린 기분이 들었다.

어느 날 밤에는 편의점에 들러 캔음료 하나를 사서 밖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애매한 온도의 음료를 천천히 마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휴대폰 화면이 켜졌다가 꺼졌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습관처럼 확인하던 메시지 창이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화면을 다시 뒤집어 놓았지만, 가슴 안쪽에서는 작게 금이 가는 소리가 났다. 그때 알았다. 별이 아린 게 아니라, 내가 이미 많이 아려 있었다는 걸.

사무치게 아리다는 감정은 울음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 때 더 또렷해진다. 괜찮다고, 이 정도쯤은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일수록 통증은 조용히 깊어간다. 그 여름의 나는 그런 상태였다. 누구에게 털어놓기엔 너무 사소해 보였고, 혼자 삼키기엔 은근히 무거운 감정들. 별은 그런 마음을 숨길 수 없게 만들었다. 너무 멀리 있고, 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내 안의 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기억은 늘 밤과 함께 돌아온다. 낮의 장면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데, 여름밤의 장면들은 이상하리만큼 선명하게 남아 있다.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에서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 혼자 걷던 골목의 그림자, 방 안에 남아 있던 희미한 불빛. 그 모든 장면 위에 별들이 겹쳐져 있다. 그때의 나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지도, 미래를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조금만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별은 희망의 상징이라고들 하지만, 그 여름의 별들은 오히려 내가 외면해 온 감정들을 정직하게 비춰주는 거울 같았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 여름의 별들이 유독 아렸던 이유는, 내가 그 빛 앞에서 너무 솔직해졌기 때문이다. 낮 동안 애써 덮어두었던 불안과 외로움, 설명할 수 없는 상실감이 밤하늘 앞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별은 여전히 말이 없었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침묵이 때로는 어떤 말보다 더 정확하다는 것도, 그 여름에 배웠다.
여름은 늘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그렇게 길게 느껴지던 계절도 어느 순간 서늘한 바람 한 줄기에 정리되어 버린다. 별들도 계절이 바뀌면 조금씩 다른 자리에 놓인다. 그해 여름이 끝났을 무렵, 나는 내가 조금 변해 있다는 걸 느꼈다. 여전히 불완전했고, 여전히 확신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 마음의 통증을 모른 척하지는 않게 되었다. 아리다는 감정을 아리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그 여름을 통과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름밤이면 가끔 하늘을 올려다본다. 예전처럼 사무치게 아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때의 아림이 나를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켜내기 위한 신호였다는 것을. 너무 밝은 것 앞에서 눈이 아팠던 이유는, 내가 그만큼 어두운 부분을 오래 안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 여름날의 별들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반짝이고 있다. 아픔과 함께, 그러나 부서지지 않은 채로. 나는 그 별들 덕분에 나의 여름을 잊지 않는다. 견뎌낸 시간과 말하지 못한 마음, 그리고 결국은 지나온 계절까지 모두 포함해서. 아마 당신에게도, 그런 여름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별이 유난히 아프게 느껴졌던 밤이. 그 여름의 별이 아직 마음에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글이 아주 조금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