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못한 관계를 건너오는 법
엄마라는 말에 곧바로 눈물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반대다. 이 단어는 내 눈물 버튼이 아니다. 눌린다고 울음이 터지지 않고, 대신 오래 눌러 두었던 숨이 막히듯 올라온다. 따뜻함보다 무게가 먼저 떠오르는 이름, 위로보다 경계가 먼저 서는 관계. 혹시 당신에게도, 부르면 마음이 무거워지는 사람이 있는가. 사랑받지 못했는데 미워할 자격도 없었던 관계를,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엄마는 나를 낳아주었다. 그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사랑과 애정으로 길러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오래 망설여진다. 돌봄은 있었고, 책임은 있었다. 다만 온기는 늘 뒤에 밀렸다. 밥은 제때 나왔고 옷은 계절에 맞게 바뀌었지만, 마음은 늘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 아이는 보호받아야 할 존재라기보다 조심해야 할 존재였다. 기분을 살피고 말을 골라야 했고, 감정을 드러내면 방 안의 공기가 먼저 굳었다. 그래서 나는 울음보다 침묵을 먼저 배웠다. 기대하는 법보다 기대를 접는 법을, 부탁하는 법보다 혼자 해내는 법을 더 빨리 익혔다.
가족이라는 말은 우리 사이를 묶는 가장 단단한 끈이었다. 혈육이니까 이해해야 한다는 말, 혈육이니까 참아야 한다는 말, 혈육이니까 미워해선 안 된다는 말들이 차례로 덧씌워졌다. 그 말들은 다정한 변명이 아니라 족쇄에 가까웠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고, 등을 돌리고 싶을 때마다 “그래도 엄마잖아”라는 문장이 나를 되돌려 세웠다. 그 문장 속에는 늘 내 감정이 빠져 있었다. 이해와 용서는 언제나 내 몫이었고, 설명과 사과는 늘 다음으로 미뤄졌다.
어릴 적 나는 엄마의 얼굴을 먼저 읽었다. 오늘의 표정이 뜻하는 바를 해석하는 일, 말 한마디의 온도를 가늠하는 일.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감정은 조용히 접어 서랍에 넣었고, 울음은 잠들기 직전에만 허락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안심이었을 텐데, 나는 늘 대비했다. 그 대비는 성인이 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분이 바뀌는 기척만으로도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고, 설명되지 않은 침묵 앞에서 마음이 먼저 도망쳤다.
엄마는 내 삶에 애증의 그림자로 남아 있다. 완전히 미워할 수도, 온전히 사랑할 수도 없는 얼굴. 어떤 날은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도 연민이 먼저 올라온다. 왜 그렇게밖에 살지 못했을까, 왜 그렇게밖에 표현하지 못했을까.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마다 또 다른 내가 고개를 젓는다. 이해는 이해일뿐, 상처를 없던 일로 만들지는 못한다고. 그 두 마음이 충돌할 때마다 나는 오래 멈춰 선다.
나는 오래도록 다짐해 왔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같은 말투로 상처를 남기지 않겠다고, 사랑을 핑계로 침묵을 강요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삶은 늘 다짐의 옆길로 흐른다. 어느 날 문득, 내 입에서 엄마와 닮은 말이 튀어나왔다. “지금은 말하지 말자.” 그 한 문장이 방 안의 공기를 단번에 굳히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 말을 하던 사람의 표정, 그 말을 듣던 아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조심했는데, 분명 다른 길을 가고 싶었는데도 인생의 흐름은 묘하게 닮아갔다.
그날 밤, 나는 오래 앉아 있었다. 왜 하필 그 말이었을까. 왜 침묵을 선택했을까. 답은 간단했다. 익숙했기 때문이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익힌 방식은 위기의 순간마다 가장 먼저 손에 잡힌다. 닮아간다는 사실은 나를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한 가지를 분명하게 했다. 반복과 닮음은 같지 않다는 것. 나는 그 문장을 알아차렸고, 멈춰 섰다. 다음 선택은 다르게 할 수 있었다. 서툴게라도 설명하려고 입을 열었고, 감정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 차이만으로도 삶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용서라는 단어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용서는 결심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상처를 충분히 통과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 그 단어를 목표로 삼지 않는다. 대신 인정하려 한다. 엄마가 내게 부족했던 것들,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오래 혼자 견뎌야 했던 시간들을. 그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해와 용서 사이에는 넓은 들판이 있고, 나는 아직 그 한가운데를 걷는 중이다.
엄마라는 존재는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부재로도, 존재로도 계속해서 나를 흔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 그림자 안에서만 살고 싶지는 않다. 애증의 감정을 그대로 안은 채, 그 너머로 걸어가고 싶다. 닮아가는 부분이 보이면 인식하고 멈춰 서고, 다른 선택이 가능하면 그쪽을 택하며. 엄마의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엄마의 삶을 그대로 살아야 할 의무는 다르니까.
엄마를 떠올릴 때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차갑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눈물로 정리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고, 동시에 나 자신을 이해하려 애쓴다. 그 사이에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만의 길을 만든다. 엄마를 부정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은 채. 다만 나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그 이름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숨을 고른다.
엄마의 딸로 태어났지만, 엄마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