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장|겨울이 끌어안은 리시안셔스의 향기

말하지 않는 마음에 대하여

by Helia

겨울이 끌어안은 리시안셔스의 향기는 문을 닫아둔 방 안에서 먼저 나를 부른다. 유리창에 맺힌 찬 기운이 천천히 흘러내릴 때, 꽃은 소리 없이 숨을 고른다. 이 향기는 달콤함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조심스럽게 다가와 앉아 있는 사람의 곁에 머문다. 마치 오늘 하루를 묻지 않겠다는 약속처럼, 지나치지 않는 거리에서.

나는 겨울에 꽃을 사는 일을 늘 망설였다. 이 계절에 무언가를 데려온다는 건, 살아 있으라고 조용히 요구하는 일 같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피어난 생은 더 선명하게 보이고, 그만큼 마음이 먼저 흔들린다. 그런데도 리시안셔스를 집에 들였던 날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그날의 겨울이 유난히 말이 없었고, 나 역시 무엇도 설명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리시안셔스의 꽃잎은 얇다. 빛을 통과시키는 결이 고운 대신, 쉽게 부서질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겨울의 품에 놓이면 그 얇음은 연약함이 아니라 태도처럼 느껴진다. 함부로 피지 않고, 급히 향을 내보내지 않으며, 자신의 리듬을 끝까지 지킨다. 흰 꽃잎에는 겨울빛의 그림자가 고요히 내려앉고, 연보라의 결은 말없이 깊어진다. 이 꽃은 겨울과 닮았다. 크게 소리 내지 않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겨울이 끌어안은 리시안셔스의 향기는 방 전체를 점령하지 않는다. 커튼 사이를 비집고 나가거나, 기억을 억지로 끌어당기지 않는다. 대신 소파 옆, 책상 끝, 컵을 쥔 손목 근처에서 멈춘다. 그 자리는 늘 사람이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다. 그래서 이 향기는 꽃의 것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사람의 것이 된다. 오늘 하루를 견딘 몸과 마음이 먼저 알아보는 온기처럼.

꽃을 두고 며칠을 지내는 동안, 겨울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아침과 저녁의 차이는 여전했지만, 시간은 덜 급해 보였다. 밤은 더 길어졌고, 침묵은 더 자연스러워졌다. 리시안셔스는 그 침묵 속에서 자신의 향을 절반만 남겨둔다. 나머지는 여백으로 비워둔다. 말하지 않는 마음이 오래간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듯이.

그해 겨울, 나는 누군가에게 끝내 안부를 묻지 못했다. 이유를 붙이자면 많았지만, 사실은 용기가 모자랐을 뿐이다. 리시안셔스의 향기가 방 안에 머물던 며칠 동안, 그 이름도 함께 남아 있었다. 향은 특정한 장면을 불러오지 않았지만, 묻지 못한 말들을 가지런히 꺼내 놓았다. 겨울은 그런 것에 관대하다.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다고, 지금은 그냥 두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계절이니까.

리시안셔스는 누군가의 마음을 대신 고백하기에는 지나치게 겸손한 꽃이다. 그래서 오히려 믿음이 간다. 이 꽃은 과장된 감정 대신, 지켜온 태도를 내보인다. 겨울의 품에서 그 태도는 더 또렷해진다. 빨리 피고 빨리 지는 꽃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만큼 머무는 꽃. 겨울은 이 느린 리듬을 존중한다. 바람을 낮추고, 빛을 아끼며, 밤을 길게 펼쳐 꽃이 스스로의 시간을 잃지 않도록 돕는다.

향기는 기억을 데려오지만, 하나의 장면에 머물지 않는다. 오래된 편지의 여백, 말없이 접어둔 스웨터의 온기, 끝내 꺼내지 못한 문장의 뒷면 같은 것들이 겹쳐진다. 그래서 이 향기는 누군가의 추억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의 현재가 된다. 겨울이 끌어안은 리시안셔스의 향기는 그렇게 오늘을 돌본다.
차갑다고 해서 닫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용하다고 해서 비어 있는 것도 아니다. 리시안셔스는 겨울 한가운데서 그 사실을 증명한다. 꽃잎 끝이 마르기 전까지 향을 아끼고, 지나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절제. 그 절제가 이 계절과 어울린다. 겨울은 견딤을 미화하지 않는다. 다만 숨을 고르고 서 있는 법을 가르친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꽃을 위로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위로는 때때로 너무 많은 말을 요구한다. 대신 이 향기는 동행처럼 곁에 있다.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먼저 사라지지도 않는다. 겨울이 끌어안은 리시안셔스의 향기는 그렇게 남는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을 알아보는 방식으로.

계절이 바뀌면 이 향기는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이동이다. 향이 떠난 자리에는 정돈된 마음이 남는다. 겨울이 꽃을 끌어안았다가 조용히 놓아준 자리에는, 포옹의 기억만 남는다. 손을 떼고도 잠시 남아 있는 따뜻함처럼. 그래서 나는 이 계절에 리시안셔스를 둔다. 오늘을 버텨낸 누군가의 방에도, 이 향기가 잠시 머물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