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었다고 믿었던 사람은 왜 꿈에 남아 있을까
꿈에서 깼는데도 하루 종일 어떤 사람이 떠나지 않은 적이 있다. 분명 잠에서 깼고, 창밖은 밝았고, 현실은 멀쩡히 굴러가고 있는데 마음 한쪽이 어딘가에 붙잡힌 채 따라오지 않는 날. 그런 날이면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혹시 내가 너의 현실에 있었던 게 아니라, 너의 꿈속에 잠시 머물다 나온 건 아닐까 하고. 너의 꿈속에서의 잔상, 그 말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는다. 완전히 사라지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지도 않은 상태로 어딘가에 걸려 있는 느낌이라서.
꿈은 늘 설명이 없다.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말을 아끼고, 가장 보고 싶은 얼굴을 앞에 두고도 이유 없이 장면을 넘긴다. 너의 꿈속에서 나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웃고 있었을지, 등을 돌리고 있었을지, 아니면 아무 말 없이 서 있었을지.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조용한 존재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소리 없이 지나간 것들은 늘 뒤늦게 무게를 드러내니까.
현실의 나는 늘 한 박자 늦다. 말은 속에서 몇 번이나 다듬고, 마음은 꺼내기 전에 먼저 접는다. 그런데 꿈이라는 곳에서는 그런 계산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꿈속의 나는 아마 조금 더 솔직했을지도 모른다. 붙잡고 싶은 마음을 그대로 내밀고, 떠날 걱정을 미루고, 남아 있는 선택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너의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하루를 따라다니는 날들이 있다. 커피가 유난히 쓰고, 하늘을 쓸데없이 오래 바라보게 되고, 아무 이유 없이 숨이 길어지는 날들.
사람은 잊힌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의 표면에서 밀려날 뿐, 마음의 아래쪽 어딘가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래서 너의 꿈속에서의 잔상이라는 말은 조금 잔인하면서도 다정하다. 선명한 현재도, 또렷한 과거도 아닌 채 흐릿하게 남아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아무 생각 없이 잠든 밤에, 하루를 접는 순간에, 내가 다시 떠올랐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너는 나를 어떤 감정으로 떠올릴까. 반가움일까, 미안함일까, 아니면 이름 붙이기 어려운 어떤 온기일까. 꿈속의 잔상은 대개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배경처럼, 풍경처럼, 장면의 일부로 존재한다.
그렇기에 더 오래 남는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은 종종 꿈이라는 형식으로 돌아온다. 어쩌면 너의 꿈이 나를 불러낸 게 아니라, 네가 끝내 정리하지 못한 마음이 나를 빌려 나타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에게 그런 사람이 된다. 현실에서는 닿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고, 끝내 묻어둔 감정으로 남은 사람. 꿈에서는 그 모든 제약이 사라진다. 웃고, 울고, 다시 손을 잡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침이 오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각자의 하루로 돌아간다. 하지만 잔상은 하루 종일 남는다.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면서도 마음은 자꾸 현실처럼 반응한다.
너의 꿈속에서의 잔상으로 남는다는 건, 가장 조심스러운 형태의 존재다. 현실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떠나지 않는 방식. 네 삶을 흔들지 않으면서도 마음 어딘가에 작은 파문을 남기는 방식. 나는 그 자리에 있었을까, 아니면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까. 네가 기억하지 못해도, 네가 굳이 부르지 않아도, 나는 그 꿈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한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것은 현실일까 꿈일까. 혹은 현실과 꿈의 경계가 가장 흐려진 어떤 순간일까. 이미 수없이 스쳐 지나간 얼굴들 사이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또다시 아무 설명 없이 지나칠까. 너의 꿈속에서의 잔상으로 남은 나는 아마 묻지 않을 것이다. 왜 떠났는지, 왜 남지 않았는지, 왜 그때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잔상은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있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네가 오늘 밤도 무사히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혹시 내가 다시 나타난다 해도, 부담 없이 스쳐 갈 수 있도록. 눈을 마주치고 잠깐 미소 정도만 건넬 수 있도록. 꿈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잔상은 늘 뒤늦게 깨닫게 된다. 깨어난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겠지. 아, 그런 사람이 있었지. 아, 그런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지 하고.
너의 꿈속에서의 잔상이라는 말은, 끝났다고 말할 수 없고 이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야기의 다른 이름 같다. 그 중간 어디쯤에서 나는 아직 머물러 있다. 네가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다. 네가 불러내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네가 잠들 때, 마음이 이유 없이 무거운 날에,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스며드는 순간만큼은, 내가 여전히 거기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 내가 너의 현실이 되지 못했다면, 적어도 너의 꿈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사람으로 남아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나는 오늘을 견딜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너의 꿈속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