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속도만 달라졌다
요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유난히 지치는 날이 있다.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은 자주 듣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그 말이 잘 닿지 않는다. 바쁘지 않은데도 숨이 가쁘고, 뒤처진 것 같지 않은데 괜히 불안하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지 않는 영화다. 대신 조용히 옆에 앉는다. 설명하지 않고, 위로하지 않고, 그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엔 낯설다. 무엇을 보라는 건지, 어디로 데려가려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사건도 갈등도 없이 하루가 반복될 뿐이다. 그런데 그 반복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 한쪽이 서서히 느슨해진다. 삶이 원래 이런 리듬이었음을 뒤늦게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히라야마의 하루는 단순하다. 새벽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면도를 하고, 자판기 커피를 마신다. 차에 올라 음악을 듣고, 공공 화장실을 청소한다. 점심을 먹고, 나무를 올려다본다. 밤에는 책을 읽다 잠든다. 이 반복은 지루하지 않다. 오히려 안정적이다. 관객은 그의 하루를 관찰하는 위치에서 출발하지만, 어느 순간 그 리듬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함께 숨 쉬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도 마음속에서는 많은 것이 지나간다.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정확한 힘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노동을 미화하지 않는다. 존엄을 외치지도 않는다. 대신 일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히라야마는 성실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묵묵하지만 비장하지 않다. 그는 오늘 해야 할 일을 오늘 한다. 내일의 성취나 미래의 보상을 끌어오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이 정도로 충분한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잠시 내려놓게 만든다.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기 전에, 오늘을 살고 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조용히 드러낸다.
히라야마의 과거는 거의 설명되지 않는다. 가족, 관계, 선택의 이유는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그 공백은 결핍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그렇게까지 알지 못한다. 설명되지 않은 채 남겨진 부분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든다. 이 영화는 그 여백을 존중한다. 관객에게 해석을 강요하지 않고, 판단을 맡기지 않는다. 대신 남겨둔다. 각자의 삶으로 가져가라고.
인상적인 것은 히라야마의 얼굴이다. 그는 크게 웃지도, 크게 울지도 않는다. 대신 하루를 받아들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체념과 수용이 겹쳐 있는 얼굴이다. 포기와 선택의 경계에서 오래 머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가볍다. 불필요한 욕망이 적고, 감각은 또렷하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떨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음악 한 곡에 하루의 온도를 맡긴다. 그는 삶을 확장하려 들지 않고, 밀도를 지킨다.
이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굳이 서두르지 않아도 될 순간에 스스로를 재촉했던 기억, 아직 오지 않은 미래 때문에 오늘을 소모해 버린 시간들. 히라야마의 하루는 그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정말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느냐고. 그렇게 해서 어디에 닿고 싶은 거냐고.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아주 낮은 목소리로 오래 남긴다.
후반부, 히라야마의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감정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머무는 표정. 그의 삶이 평온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그 표정 안에 담겨 있다. 그는 삶의 균열을 알고 있다. 다만 과잉 반응하지 않는다. 감정은 지나가게 두고, 하루는 계속된다. 이 태도가 이 영화를 잊히지 않게 만든다. 인생은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정직하게 보여준다.
퍼펙트 데이즈는 위로를 서두르지 않는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삶이 조용히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힘들 때 당장 기운을 북돋아주는 작품이라기보다, 지쳤을 때 곁에 두기 좋은 영화다.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기보다는, 바닥에 함께 앉아 잠시 쉬어주는 쪽에 가깝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묘한 변화가 남는다. 무엇을 봤는지 명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무언가를 함께 지나왔다는 감각. 삶을 크게 바꾸겠다는 결심이 아니라, 오늘 밤 조금 일찍 잠들고 내일 아침 햇빛을 제대로 보고 싶어지는 정도의 변화.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는데, 돌아가는 속도만 달라진 느낌. 퍼펙트 데이즈가 남기는 것은 바로 그 미세한 각도 조정이다.
이 영화는 말한다. 완벽한 하루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반복되는 날들 속에 숨어 있다고. 그리고 그 하루를 알아보는 감각은 삶을 서두르지 않을 때 비로소 생긴다고. 퍼펙트 데이즈는 조용하지만 강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보고 난 뒤 우리는 이전과 같은 속도로 살기 어려워진다.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 느려진다. 그 느려짐 속에서 비로소, 하루가 제자리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