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을 끝내 회피할 수 없었던 이유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나와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아, 이건 친절할 마음이 없는 영화구나. 설명하지 않겠다고, 이해시키지 않겠다고, 대신 스스로 감당하라고 말하는 영화구나. 그래서 관객석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여러 번 방향을 잃었다. 길을 놓쳤다고 느꼈고,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다는 감정도 스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손을 놓치게 만드는 장면보다, 계속 붙들어두는 공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이야기를 보여주기보다 상태를 만든다.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꾸 미끄러지고, 감정에 몸을 맡기면 어느새 안쪽으로 들어와 있다.
소년은 상실을 겪는다. 불길 속에서 사라진 어머니는 이름보다 먼저 감각으로 남아 있다. 냄새, 열기, 갑작스러운 공백. 이 영화에서 상실은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생활 속에 번져 있다. 아침의 공기, 계단의 소리, 말해지지 않은 시선들. 어른들은 아이를 보호하려 애쓰지만, 그 보호는 종종 아이를 더 고립시킨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아이는 말보다 공간으로 반응한다. 현실과 환상이 겹쳐지는 세계는 도피가 아니라 확장이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다른 층위로 옮겨 놓음으로써, 소년은 비로소 그것을 바라볼 자리를 얻는다.
왜가리는 불편한 존재다. 안내자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믿을 수 없고, 악당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애매하다. 그는 끊임없이 말을 걸지만, 그 말은 언제나 반쯤만 진실이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질문이 늘 그렇듯, 그는 불쾌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선택지를 친절히 나열하지도 않고, 정답을 암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길을 흔들어 놓는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도 같은 태도를 취하는 순간, 호불호는 갈릴 수밖에 없다. 명확한 설명을 기대한 사람에겐 불친절하고, 감정의 여백을 허용한 사람에겐 묘하게 솔직하다.
세계는 아름답지만 불안정하다. 쌓아 올린 돌로 유지되는 질서는 균형 위에 서 있고, 그 균형은 아주 작은 욕심에도 무너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장면들을 보며 나는 이 영화가 하나의 이야기라기보다 창작자의 고백처럼 느껴졌다. 오래도록 세계를 만들어온 사람이 이제는 그 세계를 넘겨주며 묻는 질문. 완벽한 구조를 이어받을 것인가, 아니면 불완전한 현실로 돌아갈 것인가. 유산은 언제나 달콤하지만 무겁다. 손에 쥐는 순간, 책임이 시작된다.
소년의 선택은 영웅적이지 않다. 세계를 구하지도, 거창한 희생을 하지도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설계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기로 한다. 그 결정은 조용하고, 그래서 더 어렵다. 이 영화가 좋았던 이유는 그 선택을 미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수도, 감동적인 연설도 없다. 삶의 중요한 결정들이 대개 그렇듯, 선택은 소리 없이 이루어지고, 무게는 나중에야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쉽게 추천할 수 없다. 서사는 불연속적이고, 장면들은 때때로 설명 없이 흘러간다.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태도다. 인생은 언제나 친절하지 않으니까. 우리는 늘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선택하고, 그 선택의 의미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 영화는 그 과정을 요약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을 그 한가운데에 세워둔다.
이 영화가 맞지 않을 사람도 분명하다. 명확한 메시지, 단단한 기승전결, 즉각적인 위로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반대로 설명되지 않은 감정 하나쯤 품고 있다면, 이 영화는 조용히 옆자리에 앉아줄 것이다. 말없이,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 않게.
엔딩에 이르러 나는 이상한 안도를 느꼈다.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실은 완전히 봉합되지 않고,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상태가 오히려 삶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 늘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설명하지 못한 감정을 안고 다음 날로 넘어간다. 이 영화는 그것을 실패로 보지 않는다. 그저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로 남겨둔다.
상영관을 나서며 다시 질문이 떠올랐다. 그대는 어떻게 살 것인가.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막막한 질문이다. 다만 예전보다 조금 덜 두렵다. 완벽한 답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선택을 하며, 그 결과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 이 영화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목소리를,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