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파티가 끝난 뒤에도 남는 인사

끝을 끝으로 보내는 연습

by Helia

추천 클래식

Gulistān — Nocturne for Piano
(작곡: 카이호스로 소라브지)


파티의 마지막 공연도 끝났지만 커튼콜이 남았다. 음악은 이미 멈췄고, 웃음은 흩어졌으며, 잔은 비워진 채 탁자 위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뜨고, 남은 것은 발자국이 지나간 바닥의 온기와 아직 식지 않은 공기뿐이다. 끝났다는 말은 충분히 반복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몸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커튼콜이 시작된다. 더 보여줄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기 위해.

앙코르는 욕심에 가깝다. 아직 박수가 남아 있다고 믿고, 한 번 더 불을 밝히는 일이다. 반면 커튼콜은 이미 꺼진 불 앞에 다시 서는 태도다. 환호를 기대하지 않고, 박수의 크기를 가늠하지도 않는다. 그저 고개를 숙인다. 오늘의 무대가 과했는지 모자랐는지는 묻지 않는다. 무대 위에 있었고, 내려올 시간이 되었다는 것만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커튼콜은 늘 담백하다. 감정의 잔향을 모아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는 순간, 말 대신 몸이 먼저 인사하는 시간이다.

공연이 끝난 뒤의 무대는 낯설다. 조명은 낮아지고, 그림자는 길어진다. 대사는 바닥에 떨어져 먼지처럼 남고, 발끝에는 아직 리듬이 남아 있다. 그 위에 서면, 방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거짓말은 아니다. 다만 소리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다른 진실이 남는다. 얼마나 버텼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무엇을 놓지 않으려 애썼는지 같은 것들. 커튼콜은 그 잔여물들을 정리하는 손놀림이다.

삶에도 파티 같은 시간이 있다. 웃음이 과했고, 말이 넘쳤으며, 관계는 빛났다. 그 시간이 끝나면 대개 우리는 다음을 서두른다. 더 큰 무대, 더 나은 장면을 꿈꾸며, 끝을 대충 덮어버린다. 그러나 커튼콜은 서두르지 않는다. 끝을 끝으로 보내는 데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요구한다. 성취의 열기가 빠져나가도, 실패의 그림자가 남아도,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을 용기를 묻는다. 이 용기는 박수와 무관하다. 남아 있는 관객의 수와도 상관없다. 스스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은 언제나 혼자서 완성된다.

나는 커튼콜이 끝난 뒤의 정적을 좋아한다. 좌석이 비워지고, 문이 닫히고, 하루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그 사이. 그 시간에는 평가가 없다. 잘했다는 말도, 아쉬웠다는 말도 잠시 쉬어간다. 대신 몸의 기억이 말을 건다. 숨을 고르던 순간, 발이 미끄러질 뻔했던 찰나, 누군가와 시선이 스쳤던 짧은 장면들이 천천히 떠오른다. 그런 것들은 소리 없이 오래 남는다. 박수는 사라져도, 태도는 남기 때문이다.

끝을 잘 맺는다는 말은 흔히 화려함을 떠올리게 하지만, 커튼콜은 반대다. 가장 빛나던 순간을 지나, 가장 단정한 자세로 서는 일이다. 감정을 덜어내고 몸만 남겨 인사하는 일. 그래서 커튼콜에는 과장이 없다. 확신도, 미련도 잠시 접어두고 오늘의 몫을 다했다는 사실만 남긴다. 이 담백함이야말로 다음을 가능하게 한다. 정리되지 않은 끝은 늘 다음을 무겁게 끌어당기지만, 잘 치른 커튼콜은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누군가는 커튼콜에서 울고, 누군가는 웃는다. 표정은 달라도 결은 비슷하다. 끝에 도착했다는 안도와, 끝을 보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나란히 얼굴에 얹힌다. 우리는 늘 하나만 택하려다 흔들리지만, 커튼콜은 둘을 함께 허락한다. 잘 해냈다는 마음과 더 하고 싶었다는 마음이 동시에 서도 괜찮다고, 그 자리는 말해준다. 선택을 미루는 게 아니라, 두 마음을 함께 내려놓는 법을 가르친다.

마지막 커튼콜이 끝나면 조명은 완전히 꺼진다. 어둠은 무대를 지우지만, 경험을 지우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둠 덕분에 남는 것들이 있다. 발걸음의 리듬, 숨의 길이, 고개를 숙이던 각도. 그런 디테일은 다음 무대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난다. 끝이 있었기에 시작이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하루의 끝에서 작은 커튼콜을 연습한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고개를 숙인다. 충분했는지 묻지 않고, 최선이었는지 따지지 않는다. 다만 오늘 무대 위에 서 있었음을 인정한다. 내려올 때가 되면 내려왔음을 받아들인다. 파티는 끝났고, 음악은 멎었지만, 커튼콜은 남아 있다.


화려하지 않아도, 남아 있지 않아도, 끝은 끝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태도. 그 태도가 다음 장면을 부르는 가장 조용한 박수라는 것을, 나는 매번 그 자리에서 다시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