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장|라넌큘러스의 겨울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계절에 대하여

by He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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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넌큘러스의 겨울은 길다. 길다는 말보다 깊다는 쪽에 가깝다. 봄의 꽃으로 불리지만, 그 이름에 이르기까지의 대부분은 겨울에 잠겨 있다. 흙 아래에서 몸을 낮추고, 온도를 재며, 아직은 아니라는 신호에 고개를 끄덕인다. 살아 있음은 숨기고, 준비만 남겨두는 계절. 라넌큘러스는 그렇게 겨울을 통과한다.

그 시절의 나도 그랬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날들. 설명할 만한 변화도, 내밀 수 있는 결과도 없던 시간. 나는 그 계절을 공백이라 불렀고, 나 자신을 미완이라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겨울은 사라진 시간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자라지 않았을 뿐, 안쪽에서는 계속 무언가가 겹쳐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꽃을 피어난 얼굴로 기억한다. 겹겹이 말린 꽃잎, 선명한 색, 한눈에 들어오는 형태. 하지만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그 이전의 이야기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뿌리의 방향, 흙과 물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감각. 이 꽃은 겨울 동안 자신이 얼마나 화려해질 수 있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대신, 얼마나 오래 침묵할 수 있는지를 선택한다.

겨울은 늘 무심하다. 햇빛은 짧고, 공기는 단단하며, 하루는 쉽게 접힌다. 라넌큘러스는 그 무심함을 밀어내지 않는다. 움츠러든 채로 버티면서도 자신을 바싹 말리지 않는 법을 안다. 기대를 부풀리지도, 절망을 키우지도 않는다. 다만 살아야 할 만큼만 숨을 쉬며 시간을 건너간다. 포기와는 다른 태도, 유예에 가까운 자세로.

라넌큘러스의 겨울을 떠올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던 날들이 달리 보인다.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속도를 낮춘 성장. 보이지 않았을 뿐,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는 가능성. 눈에 띄지 않는 준비가 가장 많은 힘을 품고 있다는 사실.

이 꽃은 겨울에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왜 아직 피지 않는지, 왜 늦는지 묻지 않는다. 비교라는 언어를 모르는 듯, 오직 감각에만 귀를 기울인다. 흙의 온기, 물의 깊이, 빛이 머무는 각도. 외부의 속도보다 자신의 리듬을 믿는 것, 그것이 라넌큘러스가 겨울을 지나는 방식이다.
조용하다.

그러나 비어 있지 않다.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말이 없다. 대신 안쪽은 분주하다. 꽃잎을 하나씩 접어 넣고, 색을 천천히 농축시키며, 줄기를 단단하게 세운다. 아직 보이지 않는 봄이 이미 시작된 상태. 사람의 시간으로 치면,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연습과도 같다. 실패해도 기록되지 않는 시간, 그러나 가장 많은 것을 결정짓는 시간.

우리는 너무 쉽게 결과를 요구한다. 피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드러나지 않으면 스스로를 다그친다. 변화의 증거를 찾느라, 변화 그 자체를 놓친다. 그러나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다른 말을 건넨다. 모든 성장은 즉각적인 형태를 갖지 않는다고. 기다림 또한 움직임의 한 방식이라고. 보이지 않는 날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계절을 만든다고.

라넌큘러스는 겨울을 적으로 삼지 않는다. 추위를 이기려 애쓰지도, 억지로 따뜻해지려 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온도 안에서 가능한 만큼 살아낸다. 그 태도는 묘하게 단단하다. 삶이 늘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의 자세처럼.

나는 내가 지나온 겨울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나를 너무 성급히 판단해 왔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여겼던 시간들, 멈춰 있다고 믿었던 계절들. 그러나 라넌큘러스의 겨울을 생각하면, 그 평가는 조금 느슨해진다. 멈춘 것이 아니라, 안으로 접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가능성.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성장기라기보다, 실패로 오해받는 시간에 가깝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충분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계절. 그러나 이 꽃은 그 오해를 해명하지 않는다. 설명 대신 침묵을, 증명 대신 시간을 선택한다. 그 선택이 결국 꽃의 밀도를 만든다.
피어난 라넌큘러스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겹겹이 쌓인 겨울이 꽃잎의 무게가 된다. 화려함은 우연이 아니라 축적의 결과다. 오래 준비한 것만이 오래 버틴다.

그래서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쓸쓸하지만 초라하지 않다. 차갑지만 헛되지도 않다. 오히려 그 계절은 꽃에게 가장 진지한 시간이다. 자신을 설명하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다만 살아내는 시간.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라넌큘러스 같은 겨울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완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준비의 한가운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봄과 나의 겨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할 필요는 없다. 계절은 언제나 각자의 속도로 온다.

라넌큘러스의 겨울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분명한 방향을 품고 있다. 언젠가 피어날 것을 아는 침묵, 스스로를 배신하지 않는 기다림.
그래서 나는, 아직 피지 않은 나의 시간들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