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지 않는 질문들이 남긴 것
철학을 읽고 위로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대신 유난히 잠이 길어지지 않던 밤들은 또렷하다. 문장 하나를 덮지 못해 불을 끄지 못했던 시간들, 생각이 생각을 불러와 베개가 점점 단단해지던 순간들. 철학은 늘 그렇게 찾아왔다. 손을 내밀지 않고, 등을 토닥이지도 않은 채. 다만 질문 하나를 남겨두고 조용히 자리를 비웠다. 그 질문은 잠든 척하는 나를 끝내 깨웠고,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더 멀리 깨어 있어야 했다.
사람들은 철학을 이해의 도구라고 말한다. 생각하면 견딜 수 있고, 알게 되면 덜 아플 거라고. 하지만 실제의 철학은 정반대다. 철학은 견디기 전에 먼저 흔든다. 이해하기 전에 먼저 무너뜨린다. 이미 믿고 있던 것들, 스스로를 지탱하던 이유들, 그럴듯하게 포장해 두었던 말들을 하나씩 벗겨낸다. 그 과정은 조심스럽지 않다. 오히려 무심하다. 철학은 인간의 연약함을 배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잔혹하다.
철학의 잔혹함은 답을 주지 않는 데 있다. 질문만 남기고 물러나는 태도. 왜 살아야 하는지 묻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재촉하지만, 그 끝에서 명확한 문장은 좀처럼 내어주지 않는다. 인간은 답을 원한다. 특히 삶이 무너질 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철학은 그 절박함을 이용하지 않는다. 대신 선택을 다시 돌려준다. 생각하는 몫도, 책임지는 몫도 전부 개인에게 남긴다. 그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철학이 위로가 아니라 훈련에 가깝다는 사실을.
철학을 조금만 깊이 읽다 보면 스스로를 변호하던 말들이 점점 사라진다. 핑계처럼 붙여두었던 이유들이 힘을 잃고, 자신을 설명하던 문장들이 낡은 옷처럼 벗겨진다. 남는 것은 침묵이다. 그러나 그 침묵은 비어 있지 않다. 오히려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했는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지금의 태도는 나를 지키는가 아니면 숨기는가. 철학은 이 질문들을 한꺼번에 던진다. 대답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자유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유를 당연한 것처럼 입에 올리지만, 철학은 곧장 발목을 붙든다. 정말 자유로운 선택이 있었는지 묻는다. 환경과 성격, 과거의 상처와 욕망을 모두 지나오지 않은 선택이 가능한지 되묻는다. 이 질문 앞에서 많은 확신이 흔들린다. 내가 나답다고 믿어온 태도들이 사실은 수많은 조건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철학은 그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끝까지 바라보게 만든다.
그래서 철학은 인간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우리는 스스로를 의미 있는 존재로 여기고 싶어 한다. 이유를 가지고 살아가며, 나름의 서사를 완성해 가는 존재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철학은 묻는다. 그 의미는 어디에서 왔는가. 누가 부여했는가. 스스로 만들었다면, 왜 그렇게 쉽게 흔들리는가. 이 질문은 다정하지 않다.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마주하면, 이전의 단순한 위안으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아는 만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상은 삶의 고통을 직시하라고 말했고, 어떤 사상은 도덕이라는 가면을 벗기라고 요구했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듯, 진실은 대개 불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철학은 그 불편함을 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견딜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래서 철학은 약이 아니라 체질을 가린다. 견딜 수 있는 사람에게는 사유의 근육을 남기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허무를 남긴다. 이 차이는 냉정하다. 철학은 공평하지 않다.
철학의 잔혹사는 인간이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가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우리는 선하다고 믿고 싶고, 옳은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러나 철학은 묻는다. 그 선함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가. 그 옳음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지켜질 수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사람은 쉽게 말을 잃는다. 철학은 그 침묵을 실패로 부르지 않는다. 다만, 침묵 역시 하나의 태도임을 알려준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을.
삶이 비교적 평온할 때 철학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굳이 들춰내는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균열이 생긴 이후에는 다르다. 의지하던 말들이 무너지고, 버팀목처럼 믿었던 관계나 계획이 사라진 뒤에 철학은 뜻밖의 현실성을 띤다. 희망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살아 있는 동안 감당해야 할 무게를 말한다. 살아남으라는 말 대신, 살아 있음의 조건을 묻는다.
철학을 오래 붙들수록 사람은 쉽게 단정하지 않게 된다. 확신은 줄어들고, 질문은 늘어난다. 이 변화는 편안하지 않다. 세상은 빠른 판단과 명확한 입장을 요구한다. 그러나 철학은 속도를 늦춘다. 잠시 멈추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 멈춤의 시간 동안 우리는 외면해 왔던 감정과 마주치게 된다. 지나가면 사라질 고통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 점에서 철학은 분명 잔인하다.
그럼에도 철학의 잔혹함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다. 쉽게 무너지지 않기 위한 예방접종에 가깝다. 아프지만, 무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철학은 말한다. 삶이 본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타인의 불완전함도 조금은 견딜 수 있다고. 이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살아본 사람에게는 이상할 만큼 현실적인 문장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을 미워하면서도 놓지 못한다. 철학은 나를 다독이지 않지만, 거짓 위안에서 멀어지게 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살아가게 두지 않는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남게 한다. 그 대가로 우리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이 철학의 잔혹사다. 그러나 그 잔혹함 덕분에 인간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고된 존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