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잔한 슬픔은 봄바람마저 끌어안는다

봄이 오면 더 선명해지는 마음

by Helia

봄이 오면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도 괜히 숨이 막히고, 햇살이 길어질수록 그늘이 더 짙어지는 사람. 이유를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괜찮다고 말하기엔 조금 부족한 상태. 봄은 그런 마음을 절묘하게 건드린다. 아무 일도 없는데, 무언가 끝난 것처럼 가슴이 허전해지는 순간들이 생긴다. 애잔한 슬픔은 그렇게 계절보다 먼저 와서, 봄바람을 끌어안고 조용히 자리를 잡는다.

겨울의 슬픔이 얼음처럼 단단하다면, 봄의 슬픔은 물기 어린 흙 같다. 손에 쥐면 형태가 흐트러지고, 놓아두면 천천히 스며든다. 크게 아프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다 보면 어느새 발목까지 적셔 놓는다. 그래서 이 슬픔은 쉽게 인식되지 않는다. 울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다. 다만 평소보다 말수가 줄고, 웃음이 조금 늦게 나온다. 마음은 정상처럼 보이지만, 속도는 미묘하게 느려진다.

창문을 열면 봄바람이 들어온다. 아직 찬 기운이 남아 있는 바람은 커튼을 흔들고, 방 안의 공기를 뒤집는다. 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이미 오래전에 지나간 장면인데도, 봄이 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기억.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알아보는 감정. 애잔한 슬픔은 바로 그런 것이다. 잊힌 줄 알았던 마음이 계절의 신호를 따라 다시 고개를 드는 일.

이 슬픔은 날카롭지 않다. 울음을 강요하지 않고, 대신 오래 머무는 방식을 택한다. 커피를 마시다 말고 잔을 내려놓게 하고, 버스 창가에 기대어 멍하니 바깥을 보게 만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평소보다 또렷하게 들어오는 날, 괜히 마음이 약해진다. 봄은 모든 것을 밝히는 계절이라지만, 동시에 감정의 그림자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숨겨둔 마음은 빛 앞에서 오히려 더 분명해진다.

사람들은 봄을 시작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시작이란 언제나 무언가를 놓는 일에서 비롯된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는 계절을 보내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인정하는 순간. 봄은 그런 작별 위에 피어난다. 그래서 이 계절에는 유난히 이별의 냄새가 난다. 꼭 누군가를 떠나보내지 않았더라도, 예전의 나와 헤어지는 느낌이 따라온다. 그때 애잔한 슬픔은 조용히 등을 두드린다. 괜찮다고, 슬퍼해도 된다고.

이 슬픔이 애잔한 이유는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기대가 남아 있고, 아직 미련이 남아 있다. 모든 것이 끝났다면 이렇게 오래 아프지도 않았을 것이다. 봄바람을 끌어안는 슬픔은 놓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온기를 확인하려는 마음에 가깝다. 다시 오지 않을 걸 알기에 더 오래 바라보는 것. 그 미묘한 거리감이 슬픔을 부드럽게 만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을 때, 꽃집 앞을 지나며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볼 때, 무심코 휴대폰 속 오래된 메시지를 스치듯 넘길 때.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슬픔의 출입구가 된다. 마음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애잔한 슬픔은 큰 사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아주 작은 균열 하나면 충분하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간다. 슬픔을 안고도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웃는다. 다만 웃음의 온도가 살짝 낮아질 뿐이다. 햇살은 분명 따뜻한데, 마음 한쪽은 늘 그늘에 있다. 그 그늘이 있다고 해서 삶이 멈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늘 덕분에 빛의 방향을 알게 된다. 애잔한 슬픔은 삶을 방해하기보다, 삶의 속도를 조절한다.
이 슬픔은 지워야 할 감정이 아니다. 극복해야 할 대상도 아니다. 함께 데리고 가야 할 감정에 가깝다.

너무 빨리 괜찮아지지 않도록, 너무 쉽게 잊지 않도록 마음을 붙잡아 준다. 만약 슬픔이 전부 사라진다면,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너무 가볍게 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애잔한 슬픔은 기억의 무게다. 그 무게 덕분에 말 한마디를 고르고, 감정 하나를 함부로 쓰지 않게 된다.

봄바람이 불 때마다 이유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 나는 굳이 이유를 찾지 않는다. 설명된 슬픔은 금세 닳아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 감정을 이름 붙이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 말로 다 하지 않은 마음은 오래 남고, 오래 남은 마음은 삶의 결을 만든다. 애잔한 슬픔은 그렇게 사람을 깊게 만든다.

이 슬픔이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했기 때문에 남은 흔적, 소중했기 때문에 쉽게 놓지 못한 마음.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보다, 이렇게 아파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 마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 슬픔이 부끄럽지 않다.

계절은 앞으로 나아가고, 봄은 언젠가 여름에게 자리를 내줄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슬픔도 조금은 옅어질 것이다. 다른 감정과 섞여 알아보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다시 나타나, 지금의 내가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지 묻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봄바람을 피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면 그대로 맞는다. 애잔한 슬픔이 함께 온다면, 그 또한 밀어내지 않는다. 끌어안는다. 아프지만,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에. 봄이 와서 슬픈 것이 아니라,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아직 마음이 따뜻해서, 나는 오늘도 봄바람 앞에 서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