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리뷰

괜찮은 척이 너무 익숙해진 사람에게

by Helia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을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고양이를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다가올 때와 물러설 때를 스스로 정하는 태도, 불려도 모른 척할 수 있고, 불리지 않아도 곁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존재. 이 영화는 귀엽고 몽글한 판타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울음을 숨기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다. 울고 싶다는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다른 얼굴로 하루를 통과해 왔는지 이 작품은 조용히 보여준다.

나는 울고 싶을 때, 사람이기보다는 고양이가 되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몸. 가까이 가고 싶으면 가고, 숨고 싶으면 숨을 수 있는 자유. 이 영화 속 고양이 가면은 변신의 도구라기보다, 버티는 사람에게 잠시 허락된 숨 고르기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 안락함은 오래 머물수록 점점 다른 것을 가져간다. 편해진 만큼, 어떤 감각은 흐릿해진다.

무게는 늘 먼저 웃는다.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농담을 던지고, 먼저 괜찮다고 말한다. 그 웃음은 밝지만 단단하다. 쉽게 상처 나지 않기 위해 굳혀 놓은 얼굴이다. 나는 그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 앞에서 더 시끄러워지고, 아픈 순간일수록 더 활기찬 척하는 태도. 진짜 감정은 늘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무게는 유난히 약한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오래 버텨온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더 아프다.

고양이가 된 무게가 바라보는 세상은 이상할 만큼 고요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정은 더 또렷해진다. 침묵은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고이는 공간이라는 걸 이 영화는 알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기색들, 닿지 않아도 느껴지는 온기들. 고양이의 몸은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녀를 점점 얇게 만든다. 존재는 편안해지는데, 이름은 희미해진다. 불러주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스스로를 부르는 목소리도 작아진다.

사랑 역시 이 작품에서는 늘 서툰 얼굴로 머문다. 고백하지 못한 마음, 묻지 못한 관계, 확인하지 못한 감정. 좋아한다는 말보다 더 무거운 것은, 좋아하지만 말하지 않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지 않는다. 안쪽에서 천천히 균열을 만든다. 무게가 고양이가 되는 순간들은, 사랑 앞에서 한 발 물러서는 우리의 습관과 닮아 있다. 가까워질수록 가면을 쓰고, 진짜 마음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이 영화가 다루는 건 변신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로 머물 것인가, 다시 인간의 자리로 돌아올 것인가. 이 질문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숨는 일이 언제나 나쁜 것도 아니고, 돌아온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한 건, 어떤 길을 택하든 무언가는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 앞에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결국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가면을 쓴 채로 하루를 견뎌온 날들이 있다. 웃는 이모티콘으로 감정을 대신하고, 괜찮다는 말로 대화를 닫고, 연락을 끊는 쪽을 택해 마음을 숨겼다. 그때의 나는 고양이처럼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는 대신, 누구에게도 제대로 불리지 않는 상태. 이 영화는 그 상태가 얼마나 달콤하면서도 위험한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후반부에서 무게가 마주하는 울음은 크지 않다. 요란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너무 늦게 도착한 울음이라서 오히려 말이 없다. 오래 눌러둔 감정은 소리를 잃는다. 이 작품은 울음을 모든 것을 바꾸는 장치로 쓰지 않는다. 울고 난 뒤에도 삶은 이어지고, 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더 이상 완벽한 가면 뒤에 숨지 않겠다는 마음. 그 마음은 자주 흔들리고, 여러 번 넘어질 것이다. 그래도 자기 얼굴로 세상을 한 번쯤 마주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고양이가 부러워진다. 다가올지 물러설지를 스스로 정하는 존재. 하지만 작품은 마지막에 조용히 속삭인다. 가면은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줄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고. 고양이가 되는 선택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그 자리에 오래 머무는 건 또 다른 공백을 남긴다. 인간으로 돌아온다는 건 강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약한 채로도 살아가겠다는 결심에 가깝다.

울고 싶은 나는 고양이 가면을 쓴다는 성장담이라기보다 인정에 대한 이야기다. 더 단단해지는 법이 아니라, 약한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법에 대한 기록. 우리는 자주 강해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울고 싶다는 마음을 들키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영화는 그 질문을 크게 던지지 않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있는 선택을 한다.
나는 아직도 가끔 고양이가 되고 싶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로 하루를 건너고 싶을 때가 있다. 가면을 벗었다고 해서 울지 않는 사람이 된 건 아니다. 다만 이제는 안다. 울고 싶은 마음을 숨기느라, 나 자신을 지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이 작품은 그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장면으로 남겨둔다. 그래서 오래 머물고, 자주 떠오른다. 괜찮은 척이 너무 익숙해진 날, 이유 없이 고양이가 부러워진 날, 이 이야기는 다시 조용히 나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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