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이라는 이름의 박탈
운동장 한가운데 흰 선을 긋고, 계주 바통을 쥐고 숨을 몰아쉬던 아이들. 도시락 가방에서 김밥 냄새가 새어 나오던 아침. 축구공 하나에 서넛이 달려들어 먼지를 일으키던 오후.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넘어지면 무릎에 딱지가 앉았고, 지면 울다가도 금세 웃었다. 그 하루는 시험 범위에도 없었고 생활기록부에도 적히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오래 남았다.
그런데 이제 그 장면들이 조심스럽다 한다. 다칠까 봐, 싸울까 봐, 민원이 들어올까 봐. 운동회는 축소되고, 축구는 제한되고, 소풍은 줄어든다. 아이들을 보호한다는 말은 점점 단단해지는데, 아이들의 웃음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 걸까. 아이들인가, 아니면 어른들의 불안인가.
체벌을 하자는 건 아니다. 겁으로 가르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러나 잘못을 잘못이라 말해줄 어른은 필요하다. 선을 넘으면 멈추게 하고, 사과해야 할 때 고개를 숙이게 하는 단단한 목소리. 그게 진짜 보호다. 요즘은 혹시라도 누군가 상처받을까 봐 모든 판단을 흐리고, 혹시라도 문제가 될까 봐 모든 행동을 접는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책임을 배우기보다 회피를 먼저 익힌다. 혼날까 봐 숨고, 기록 남을까 봐 침묵한다. 그렇게 자란 마음은 단단해지기보다 작아진다.
아이들 싸움은 아이들 세계 안에서 풀어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 물론 폭력과 지속적인 괴롭힘은 어른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작은 충돌까지 거대한 사건으로 키워버리면, 아이들은 갈등을 해결하는 법 대신 갈등을 피하는 법부터 배운다.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사과문으로 만들고, 하루면 지나갈 일을 긴 그림자로 남긴다. 보호라는 이름이 때로는 과잉이 된다.
운동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거긴 속도를 시험하는 자리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도, 느린 아이도,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만난다. 줄다리기에서 손바닥이 빨갛게 부어오르던 날, 우리는 힘을 합치는 법을 배웠다. 축구공이 빗나가 골대를 넘겼을 때, 우리는 실수를 견디는 법을 배웠다. 소풍 버스 안에서 창밖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시간, 우리는 세상이 교실보다 넓다는 걸 알았다. 이런 배움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남는다.
아이들의 시간은 유한하다. 초등학생의 오늘은 단 한 번이다. 내년에 또 운동회가 있다고 해도, 그건 다른 학년의 운동회다. 키가 조금 더 자라고, 목소리가 조금 더 굵어지고, 마음이 조금 더 무거워진 뒤의 하루다. 지금의 속도와 지금의 설렘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아깝다. 우리는 그 아까움을 너무 쉽게 접어버리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세상은 달라졌다. 사고는 빠르게 번지고, 책임은 오래 남는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또렷해졌다. 그 변화는 소중하다. 그러나 과거의 무심함을 고치겠다고 현재의 숨통까지 조여서는 안 된다. 무관심과 과잉 사이 어딘가에 우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 넘어지지 않게 붙잡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자리.
학교는 벽이 아니라 창이어야 한다. 창을 닫으면 먼지는 막을 수 있겠지만, 바람도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들은 유리 진열장 속에 전시될 존재가 아니다. 흙을 밟고, 숨이 차도록 달리고, 때로는 다투고 화해하며 자란다. 완벽한 안전은 없다. 대신 감당할 만큼의 믿음은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서볼 수 있다는 믿음.
아이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 어른들의 겁이 커질수록 아이들의 공간은 줄어든다. 혹시라도, 만약에, 괜히. 그 말들이 모여 운동장의 선을 지운다. 그러나 아이들의 꿈은 거창한 직업명이 아니라, 오늘 마음껏 뛰어본 기억에서 자란다. 계주에서 바통을 받아 끝까지 달렸다는 감각, 소풍날 비가 와도 친구와 웃었다는 장면, 축구를 하다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났다는 확신. 그런 기억이 사람을 버티게 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지키고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자랄 시간을 줄이고 있을 뿐이다.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보호가 박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을 바로잡되, 시도를 막지 말자. 갈등을 조율하되, 경험을 빼앗지 말자. 운동회가 사라진 학교는 조용할지 몰라도, 조용함이 곧 건강은 아니다. 아이들의 웃음은 조금 시끄러워도 괜찮다. 그 소음 속에서 마음이 큰다.
운동회도, 축구도, 소풍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위험을 없애겠다는 명분으로 아이들 다움까지 지워버리진 말자. 아이들이 아이로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시간을 어른들의 불안으로 채우기엔, 아이들의 하루가 너무 눈부시다.
학교는 감옥이 아니어야 한다.
아이들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주인공이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겁 많은 어른이 아니라 믿어주는 어른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