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부터 확인하던 버릇
운동화 끈이 풀리면, 나는 먼저 바닥을 본다. 까만 끈 끝이 아스팔트 위를 질질 끌고 있다. 이런 말이 있다. 오른쪽이 풀리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내 생각을 하고 있고, 왼쪽이 풀리면 방금까지 함께 있던 사람이 나를 떠올리고 있다는 이야기. 웃기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매번 방향부터 확인했다. 믿어서가 아니라, 혹시나 해서.
고등학교 운동장 트랙 위에서 처음 그 말을 들었다. 친구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야, 오른쪽 풀렸어. 누가 너 생각하나 보다.” 그 말 한마디에 나는 괜히 발끝을 내려다봤다. 정말 오른쪽이었다. 그날따라 교회 동생 상훈이 생각났다. 나란히 걷다가 차도 쪽으로 내가 서 있으면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잡아 인도 쪽으로 옮겨주던 애. 운동화 끈이 풀리면 무릎을 꿇고 묶어주던 애. 그 장면이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순간만큼은 그 미신이 사실이었으면 했다.
나는 혼자서 의미를 붙였다. 오른쪽이니까, 지금 상훈이도 나를 떠올리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나중에 알았다. 그는 원래 그런 애였다. 여자친구가 따로 있었고, 나뿐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도 다정했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기본적으로 그런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한동안 나는 끈의 방향을 확인했다. 사실을 알아도 기대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비 오는 날 횡단보도 앞에서 끈이 풀린 적이 있다. 물이 고인 보도블록 위에 끈이 젖어 붙었다. 우산을 한 손에 들고 쪼그려 앉아 매듭을 고치는데, 문득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떠올랐다. 이미 연락은 끊겼고, 서로의 일상에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이름이 튀어나왔다. 오른쪽이었는지 왼쪽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그 순간 내가 먼저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때 처음 의심했다. 누가 나를 떠올려서 끈이 풀린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끈의 방향에 집착한 건 아닐까. 순서가 바뀌어 있었던 셈이다. 나는 결과를 보고 원인을 만들어냈다. 끈은 그냥 느슨해졌을 뿐인데.
운동화 끈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아침에 급하게 묶으면 특히 그렇다. 두 번 묶지 않고 한 번만 묶어두면 더 잘 풀린다. 관계도 비슷하다. 말로 확인하지 않고 눈치로만 넘기면 금방 어긋난다. 단단히 묶는다고 오래가는 것도 아니다. 너무 꽉 묶으면 발등이 아파서 걷기 힘들다. 적당히 조이고, 필요하면 다시 묶어야 한다.
나는 한동안 누군가가 내 끈을 대신 묶어주길 기다렸다. 내가 먼저 허리를 숙이기 싫어서. 먼저 연락하기 싫어서. 먼저 말 꺼내기 싫어서. 끈이 풀리면 ‘누가 나를 생각하나 보다’ 하고 넘어갔다. 사실은 내가 먼저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번은 약속 장소로 급히 뛰어가다가 끈이 풀려 크게 휘청한 적이 있다. 거의 넘어질 뻔했다. 그때야 짜증이 났다. ‘누가 생각하긴 뭘 생각해.’ 그냥 내가 대충 묶어둔 탓이었다. 쪼그려 앉아 매듭을 두 번 단단히 묶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끈을 묶을 때 조금 더 신경을 쓴다. 남 탓하기 전에 내가 제대로 묶었는지부터 본다.
그래도 습관은 남아 있다. 길을 걷다 끈이 풀리면 여전히 방향을 확인한다. 오른쪽이면 잠깐 웃고, 왼쪽이면 괜히 주변을 한 번 둘러본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지금 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걸. 끈이 알려주는 게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던 걸 확인하는 과정이라는 걸.
상훈을 떠올리면 아직도 한 장면이 선명하다. 운동화 끈을 묶어주고 일어나며 툭 털던 손. 아무 일 아니라는 듯한 표정. 나는 그 장면 하나로 한참을 버텼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내 끈을 스스로 묶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대신 묶어준 매듭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은 끈이 풀리면 바로 멈춘다. 주변을 둘러보기 전에 먼저 쪼그려 앉는다. 끈을 집어 들어 먼지를 털고, 한 번 더 묶는다.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방향은 그다음이다. 누가 나를 떠올리는지보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은 그 말을 다시 꺼내본다. 오른쪽은 나를 좋아하는 사람, 왼쪽은 방금까지 함께 있던 사람.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그 말 덕분에 나는 몇 번이나 웃었고, 몇 번이나 설렜으니까. 다만 이제는 거기에 매달리지 않는다. 끈이 풀렸다고 해서 의미를 덧칠하지 않는다. 그냥 풀렸구나, 하고 묶는다.
오늘 당신의 운동화 끈은 어느 쪽이 풀렸는지.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누구였는지. 혹시 그 사람이 아직도 당신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끈은 자주 풀린다. 그때마다 우리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다시 묶는다. 누가 생각하든 말든, 넘어지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매듭을 만들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