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만든 얼굴
나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얼굴보다 먼저 낯선 문장이 떠오른다. “너희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었다.”
누군가가 건네준 설명들, 오래된 사진 속의 표정, 액자 안에 갇힌 한 남자. 그것이 내가 가진 아버지의 전부다.
기억이 아니라 이야기로만 존재하는 사람.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한 단어인 ‘아버지’가 나에게는 조금 먼 호칭이었다. 부르면 대답이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이름 같은 것. 어린 나는 그 사실을 크게 슬퍼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가져본 적 없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 풍경에는 언제나 빈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채워져 있는 자리였지만, 나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던 자리.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를 키워 주셨다. 밥을 챙겨 주고, 학교에 늦지 않게 깨워 주고, 겨울이면 두툼한 옷을 입혀 주었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나는 집이었고, 마당에는 오후의 햇빛이 길게 드리워졌다. 그곳에는 분명 애정이 있었다.
그러나 어린 마음은 이상하게도 온도의 차이를 알아챘다.
햇볕이 들긴 하지만 봄볕은 아닌 오후의 빛처럼, 따뜻하지만 어딘가 모자란 온기. 부모라는 자리는 다른 계절의 햇빛이 비추는 자리였다. 아무리 다른 빛으로 채워도 그 자리의 공기는 조금 달랐다.
학교 운동회 날이 떠오른다.
운동장은 소풍처럼 떠들썩했고, 아이들은 부모 옆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 어깨 위에서 깔깔 웃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엄마 손에서 귤을 받아먹고 있었다. 그 장면을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음속에 작은 문장이 하나 떠올랐다.
아, 나는 저쪽에 속한 사람이 아니구나.
그 생각은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크게 울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아무렇지도 않지도 않았다. 다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구멍 하나가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구멍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은 어린 시절 채워진 만큼 세상을 버틴다고들 한다.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란 사람을 보면 알 수 있다. 표정이 다르다. 웃을 때 눈이 먼저 풀리고, 호의를 받으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다. 마음속 어딘가에 단단한 바닥이 깔려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오래된 햇살 같은 밝음이 있다.
반대로 결핍 속에서 자란 사람은 조금 조심스럽다.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어딘가 한 발짝 떨어져 서 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고, 사소한 무례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이미 안쪽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이해했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내가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사람들과 섞이면 어색해지는지, 왜 마음이 쉽게 다치는지, 왜 자꾸 한 걸음 물러서게 되는지.
오래 생각하다가 결국 한 단어에 닿았다.
결핍.
애정결핍이라는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그늘 같다. 햇빛이 모자란 화분처럼 잎이 조금 기울어진 채 자라는 느낌. 물을 주지 않은 것도 아닌데, 어딘가 생기가 부족한 모습.
그래서 결핍 속에서 자란 사람은 사랑 앞에서 망설인다. 누군가 다정하게 대해 주면 기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경계한다. 이 온기가 언제 식어 버릴지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말한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우리는 결국 어른이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웃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일도 없는 얼굴로 하루를 건넌다.
그러나 결핍이라는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오래된 흉터처럼 남아 있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어떤 순간에 문득 손끝에 닿는다. 그때마다 우리는 잠깐 멈춘다.
아, 나에게 이런 시간이 있었지.
그렇다고 해서 결핍이 전부 어둠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도 결핍은 사람을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왜 이런 말에 흔들릴까, 왜 이런 표정이 마음에 남을까, 왜 어떤 침묵이 이렇게 길게 느껴질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을 보게 된다.
어쩌면 결핍은 하나의 창문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는 감정을 오래 붙잡고 바라보게 만드는 창문.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것을 글로 남기고, 어떤 사람은 그림으로 그린다.
나 역시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부모의 사랑 속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금 더 밝았을까, 조금 더 단단했을까. 아니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정확한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본 기억은 없지만, 그 결핍 덕분에 사람의 표정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천천히 읽게 되었고, 세상에는 각자 다른 모양의 빈자리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마 우리는 모두 조금씩 결핍 속에서 자라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사랑이 부족했고, 누군가는 이해가 부족했고, 누군가는 위로가 부족했다. 완전히 채워진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작은 온기를 건넨다. 어린 시절 듣지 못했던 말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누군가에게 받지 못했던 위로를 조용히 나누면서 살아간다.
결핍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예전에는 상처처럼 느껴지던 것이 어느 날에는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을 가만히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나는 부모에게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사람의 마음을 오래 바라보게 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