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가 부족하면 생각도 좁아진다
나는 몇 번이나 『좋은 생각』에 글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마다 떨어졌다.
메일함을 열면 늘 비슷한 문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호에는 실리지 않는다는 짧은 안내. 길지도 않은 문장이었지만 읽는 순간 마음 어딘가가 살짝 구겨졌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글을 보내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 많은 글 사이에서 내 글이 빠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다시 보냈다.
그리고 또 떨어졌다.
세 번째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습관처럼 메일을 확인했다. 혹시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늘 같은 자리로 돌아왔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보낸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처음에는 대충 훑어보려 했다. 하지만 몇 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글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걸리는 문장도 없었다.
마치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 국 같았다. 배는 채울 수 있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는 그런 맛.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내 글에는 단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머릿속에서는 분명 장면이 또렷했다. 비 오는 골목, 저녁의 냄새, 혼자 남은 의자 같은 것들. 그런데 막상 문장으로 옮기면 그 풍경이 반쯤 흐려졌다. 연필로 그린 그림 위에 물을 한 번 끼얹은 것처럼 윤곽이 번졌다.
나는 감정을 먼저 쓰는 사람이다. 마음이 움직이면 문장이 따라온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렇게 글을 써 왔다. 가슴이 먼저 움직이면 손이 자연스럽게 종이를 채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감정이 없는 글은 건조하다. 그러나 감정만으로는 문장이 오래 서 있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단어가 모자라면 생각도 좁아진다.
비슷한 말 몇 개로는 감정의 결을 다 담을 수 없다. 사람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슬픔 하나에도 여러 빛깔이 있다. 가라앉는 슬픔, 서서히 번지는 슬픔, 아무 소리 없이 앉아 있는 슬픔.
하지만 나는 늘 같은 말을 꺼내 놓고 있었다.
슬프다.
허전하다.
쓸쓸하다.
이 세 단어가 내 글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세 가지 물감만 가지고 풍경을 그리는 것과 비슷했다. 산도 그리고 하늘도 그리고 강도 그릴 수는 있다. 그러나 색이 몇 개 안 되면 그림이 쉽게 평평해진다.
나는 그 사실을 낙방 메일 몇 통을 받은 뒤에야 깨달았다.
그날 밤 책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책들은 조용히 줄을 서 있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단어가 들어 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말들도 거기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 이상해졌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하면서도 언어를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그냥 읽고 쓰기를 반복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라 여겼다.
물론 그것도 틀린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는 생각보다 깊은 숲이었다. 숲 가장자리만 걷고 있으면서 나는 이미 숲을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국문학과에 들어가기로 했다.
누군가는 웃을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사람이 대학에 간다고 해서 문장이 갑자기 달라지겠느냐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다. 학교가 대신 글을 써 주지는 않는다. 강의실에 앉아 있다고 해서 문장이 저절로 좋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어를 오래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은 생긴다.
같은 뜻처럼 보이는 단어들을 가만히 놓고 비교해 볼 수 있다. ‘쓸쓸하다’와 ‘적막하다’는 어떻게 다른지, ‘허전하다’와 ‘공허하다’는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는지.
이 작은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 문장은 달라진다.
나는 그 차이를 알고 싶었다.
어떤 단어는 종이 위에서 가볍게 떠다니고, 어떤 단어는 묵직하게 바닥을 누른다. 어떤 말은 밤공기처럼 서늘하고, 어떤 말은 햇빛처럼 따뜻하다.
그 미묘한 온도를 구분할 수 있다면 내 글도 조금은 달라질 것 같았다.
나는 이미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아직 서투른 학생이기도 하다. 문장을 쓰다 보면 늘 같은 지점에서 멈춘다. 더 알맞은 말이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 어딘가에 잠겨 있는 단어들이 떠오른다. 아직 꺼내지 못한 말들. 아직 만나지 못한 표현들.
국문학과에 들어간 이유는 어쩌면 그 말들을 찾기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을 넓힌다. 새로운 단어 하나를 알게 되면 마음속에 작은 창이 하나 더 열린다. 그 창을 통해 전에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들어온다.
나는 그 풍경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좋은 생각』에 글을 보낼지도 모른다. 그때도 떨어질 수 있다. 그 잡지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글을 보내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많은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다양한 빛깔의 단어를 손에 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단어들로 다시 문장을 만들 것이다.
나는 거창한 꿈을 가지고 국문학과에 들어간 것은 아니다. 그저 한 문장을 더 정확하게 쓰고 싶었다.
메일함에 도착하던 그 짧은 낙방 안내는 어쩌면 나에게 작은 이정표였는지도 모른다.
몇 번의 낙방 끝에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더 많은 단어를 만나야 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