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 싫어서 남았다
나는 또 떠나려고 했다.
가방을 싸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이미 반쯤 빠져 있었다.
대화창을 닫고, 번호를 지우고, 조용히 사라지는 장면을 여러 번 떠올렸다. 사라지는 건 어렵지 않다. “상황이 그랬다.” “여건이 안 됐다.” “어쩔 수 없었다.” 몇 마디면 충분하다. 사람들은 대개 더 묻지 않는다. 그 말은 편리하다. 나를 덜 나쁜 사람으로 남겨준다.
그런데 그 문장을 입에 올리는 순간, 내가 제일 먼저 알게 된다. 정말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피한 건지.
여기서 도망쳐봤자 갈 곳도 없었다. 정확히는, 다른 곳으로 가도 달라질 게 없을 것 같았다. 장소는 바뀌어도 나는 그대로다. 불편한 말 앞에서 굳어버리는 표정, 억울해도 웃어넘기는 습관, 설명하다가 스스로 초라해지는 기분. 그 감각은 어디든 따라왔다.
그래서 멈췄다. 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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