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사를 잘하는 아이였고,

그게 문제였다.

by Helia

어릴 때, 인사를 잘한다고 칭찬받은 적이 있다.
그날 나는 옆집 아저씨 무릎에 앉았다.
그리고 그 이후로, 나는 인사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날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여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손의 감촉만은 또렷하다.
나는 칭찬을 들은 아이였고, 그 말 한마디에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오라는 손짓.
나는 망설이다가도 결국 다가갔다.
무릎 위에 앉혀졌다.
시선은 낮아졌고, 손은 가까워졌다.
처음엔 가볍게 닿는 듯했는데, 점점 느려졌다.
허벅지를 따라 올라오던 손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숨을 참았다.
몸이 굳었다.

어딘가 잘못됐다는 건 알겠는데,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기분이 나빴다.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집에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그건 내 나름의 구조 요청이었다.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전달하려고 애썼다.
엄마는 말했다.

“예뻐해서 그런 거야.”

그 말은 상황을 덮는 담요 같았다.
부드럽게 덮였지만, 숨이 막혔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느낀 감정이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이, 별것 아닌 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것.

그 이후로 나는 아저씨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고개를 돌렸고, 발걸음을 늦췄다.
인사를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몸이 먼저 긴장했다.
인사는 더 이상 예의가 아니었다.
어딘가로 끌려가는 입구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는 계속 요구됐다.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 한다는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해야 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이미 균열이 생겨 있었다.
입으로는 “안녕하세요”를 말했지만,
그 말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점점 인사를 통과시키는 사람이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인사를 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였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했다.
고개를 숙이고,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돌아오는 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말이 공중에 떠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느낌.
어떤 선생님은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평가하듯, 눈으로만 지나갔다.
어떤 사람은 아예 듣지 못한 것처럼 걸어갔다.
나는 그 장면을 반복해서 겪었다.
인사는 나갔는데,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순간.
그건 무시보다 더 비어 있었다.
나는 점점 확신하게 됐다.
이건 나만 하는 행동이라는 것.
그리고 이 행동이, 아무 의미도 만들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나는 멈췄다.

어느 날부터 인사를 하지 않았다.
크게 결심한 것도 아니고, 선언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하지 않게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인사를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중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고,
그저 나 혼자만 하고 있는 행동 같았다.
그럴 거라면, 하지 않는 쪽이 더 편했다.
나는 다시 조용한 사람으로 돌아갔다.
원래의 나처럼, 필요하지 않은 행동을 줄이는 쪽으로.
지금의 나는 완전히 인사를 끊은 사람은 아니다.
다만, 인사를 선택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
음식이 좋았고 그 시간이 괜찮았다면
나는 말한다.

“잘 먹었습니다.”

그 말은 억지로 꺼내는 인사가 아니라,
그 순간을 지나가며 남기는 작은 표시다.
하지만 맛이 없었을 때는 그 말을 하지 않는다.
입 안에 남아 있는 감각과 다른 말을 하는 건,
내게는 이상한 일이다.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수고하세요.”

그 말은 부드럽게 닫히는 문 같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는다.
어떤 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지나간다.
그게 가장 가벼운 날도 있다.
나는 이제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인사를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에만,
필요한 만큼만 꺼낸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사를 배운 적이 없다.
나는 인사를 견디는 법을 먼저 배웠다.
해야 해서 했고,
불편했지만 멈출 수 없었고,
그 과정을 지나오면서
나에게 맞는 방식을 다시 만들었다.
예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예의가 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건 나에게 맞지 않는 형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인사를 한다.
다만, 나를 잃지 않는 선에서만.
친절을 연기하지 않는다.
대신, 불편함을 조용히 통과시킨다.
그리고 그 조용한 선택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