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만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

보고 싶었는데도, 가지 않았다

by Helia

3주 만에, 할머니를 보러 갔다.
사실 가기 싫었다.
가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계속 미뤘다.
바빴다는 건 핑계였다. 과제는 늘 있었고, 컨디션도 늘 완벽하진 않았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건, 조금의 귀찮음이었다. 그걸 인정하는 데까지 3주가 걸렸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서로를 미루며 시간을 늘렸다. 그러다 오늘, 이유 없이 그냥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명할 수 없는 결심은 대개 늦게 도착한다.

추모공원 입구를 지나며 공기가 달라졌다. 겨울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틈에 봄이 스며든 냄새였다. 서늘한 바람 끝에 얇게 감긴 따뜻함이 있었다. 그 결을 따라 걷다 보니, 가지 끝에 매달린 꽃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벚꽃이었다.

아, 이제야 봄이구나.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분명히 누군가에게 전해졌다. 나는 그 말을 들은 사람처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만월당으로 향하는 길은 익숙했지만, 오늘은 조금 낯설었다. 오지 않은 시간만큼 길이 길어 보였고,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다시 미룰 것 같아서.
그 자리에 섰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데, 모든 게 달라진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인사를 건넸다.

왔어.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쌓인 시간이 길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먼저 도착해 자리를 만들었다. 그 위에 하나씩 말을 올렸다.

요즘 좀 바빴어.
자주 못 왔어.

핑계처럼 들릴 말을 굳이 고르지 않았다. 여기서는 꾸밀 필요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더 정확했다. 나는 조금 늦게 온 사람이었고, 그 늦음까지 포함해서 나였다.

문득,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특별한 날이 아니라서 더 선명한 감정이었다. 이유 없이 떠오르는 얼굴은 대개 오래 남는다. 나는 그 얼굴을 떠올린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 대학 들어갔어.

늦은 보고였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또 미룰 것 같았다. 문장은 짧았지만, 그 뒤에 붙어 있는 시간은 길었다. 고민과 망설임, 시작과 두려움이 겹겹이 붙어 있었다.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도 해보려고.
누군가의 대답을 기다리는 말이 아니었다. 다만 이 문장이 내 안에서만 맴돌지 않기를 바랐다. 소리로 꺼내놓으면, 조금은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가장 조심스러운 부탁을 꺼냈다.
호철이… 아프지 않게 잘 좀 봐줘.

이 문장은 늘 무게가 있다.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을 대신해서 말해야 할 때, 말은 더 느려진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침묵이 부탁을 데려가길 바랐다. 내가 다 보지 못하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막연함에 기대는 방법밖에 없을 때가 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섰다.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지 않아도, 그 자리는 늘 같은 자리일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됐다.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발걸음은 느려졌고, 시선은 자주 멈췄다. 목련이 하얗게 부풀어 있었고, 산수유가 노란 점처럼 흩어져 있었다. 개나리는 햇빛을 모아 터뜨린 것처럼 번져 있었고, 벚꽃은 그 사이에서 가볍게 흔들렸다. 하나로 이어지지 않은 봄이, 여기저기 조각처럼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조각들 사이를 걸었다. 완전히 시작되지 않은 계절을 밟는 기분이었다. 그 미완의 풍경이 이상하게도 편안했다. 모든 게 제때 도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냥 지나치기엔 아쉬워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 속으로 꽃들이 들어왔다. 초점을 맞추고, 숨을 고르고, 셔터를 눌렀다. 그 짧은 순간마다 시간이 얇게 고정됐다. 하지만 사진 속에는 언제나 일부만 남는다.

바람의 온도, 공기의 냄새, 마음이 흔들리는 결 같은 것들은 끝내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몇 장을 더 찍었다. 혹시나, 그 일부가 조금 더 늘어날까 싶어서.

햇빛은 맑았다. 맑다는 말이 납작하게 느껴질 만큼 투명했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춥지는 않았다. 손끝에 닿는 공기가 시리다 가도, 금세 풀렸다. 그 미묘한 온도가 오늘의 기분과 닮아 있었다. 완전히 따뜻하지도, 완전히 차갑지도 않은 상태. 그 사이 어딘가.

나는 한참을 걷다가 멈춰 섰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왜 이곳을 미루고 있었을까.
정답은 단순했다. 바빴고, 피곤했고, 귀찮았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중요한 것들을 미루는 이유는 늘 거창하지 않다. 사소한 것들이 겹쳐져 시간을 만든다. 그 시간 위에, 우리는 조금씩 늦어진다.
하지만 늦었다고 해서 도착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오늘처럼.

나는 다시 걸었다. 발걸음이 처음보다 가벼웠다. 뒤에 남겨둔 것은 슬픔이 아니라, 조금의 안정감이었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는 걸.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있고,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그 자리를 찾아갈 수 있다는 걸. 그 사실이 오늘의 공기처럼 조용히 스며들었다.

나무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벚꽃이 그 아래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꽃잎이 아주 조금씩 떨렸다. 떨어지지 않는 흔들림이, 오래 머무는 방식처럼 보였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한동안 그 장면을 바라봤다.
늦게 온 봄이었지만,
나는 결국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