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이의 자존을 짓밟는 사람들

말이 남긴 자리

by Helia

어릴 적 나에게 교실은 세계였다. 그 작은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진심 같았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 친구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나를 정의하는 기준처럼 느껴졌다. 칠판과 분필, 차가운 창틀, 종소리, 국어책의 종이 냄새까지—나는 그 세계 속에 조용히 존재했고, 언제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대답을 잘하지 않았고, 질문도 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조용히 관찰하며 흘려보냈다.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판단할까를 먼저 생각하던 아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던 나날들.

어느 날, 전교 1등과 내가 짝이 되었다. 담임은 “이 아이가 널 도와줄 거야”라고 말했고,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반 전체가 웃었고, 나는 웃지 못했다. 왜 하필 나였을까. 나는 누군가의 기준이 되었고, 누군가의 손에 비교당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런 나를 누구도 위로하지 않았다. 칠판 앞에 세워지고, “넌 할 수 있는데 왜 안 하냐”는 말을 듣고,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는 지적을 받으며 나는 매일 조금씩 작아졌다. 안경을 벗어던지던 선생님의 얼굴, 순간의 정적, 그리고 나를 향한 냉기—그 모든 장면들이 마치 잘 짜인 연극처럼 반복되었다. 하지만 관객은 없었다. 나는 배우이자 관객이었고, 상처 입은 나만 무대에 남았다.

가장 잊지 못하는 건 수학여행 전날의 일이었다. 담임은 교실 한가운데서 물었다. “우리 반 왕따 누구니?” 질문이 아니라 지목이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물은 그 말은, 확인이 아닌 낙인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몰려왔다. 나는 그날 이후로 내가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어른은 말의 무게를 모른다. 특히 교실 안에서 교사는 말로 칼을 쥐고 있다. 그건 아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너무 쉽게 베기도 한다. 그때 나는 그걸 처음 알았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게 별로 없다. 외운 공식이나 암기한 역사 연도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무시당하는 법, 말없이 견디는 법, 숨죽이는 법, 잘 들리지 않게 울고 있는 법은 어릴 때 이미 완벽히 익혔다. 그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책에 적힌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선생님들의 말속에서 몸으로 배운 것들이었다. 말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 나는 거꾸로 배웠다. 말이 사람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나는 지금도 교실을 보면 가슴이 조인다. 바랜 책상, 햇살이 비치는 창가, 줄 맞춰 붙은 의자들. 그 안에 있던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내가 말하려는 건 이거다. 말의 무게를 모르는 어른이, 말로 아이를 부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교실에서 아직도 그 말을 버리지 못한 채 서 있다는 것.

이 글은, 그 말이 남긴 자리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