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전쟁터
전교 1등, 홍새롬과 나란히 짝꿍으로 앉혔다.
날 자극시키려고 한 건지, 아니면 반 아이들 앞에서 굳이 열등함을 확인시켜주려 한 건지 모르겠다.
담임은 “이 친구가 널 도와줄 거야”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는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선고 같았다.
나는 그날부터 교실 안에서 비교의 표본이 되었고,
홍새롬은 칠판 옆의 모범답안처럼 내 옆에 앉았다.
그 애 이름은 아직도 또렷하다. 홍. 새. 롬.
그 애는 결코 착하지 않았다.
무시와 경멸로 얼룩진 눈빛, 틀린 답에 씩 웃던 입꼬리,
묘하게 듣기 싫은 말투와, 은근한 조롱이 그 애의 언어였다.
그 애는 혼자 다니지 않았다.
언제나 비슷한 애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고,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이 왜 존재하는지를
그때 처음 피부로 알았다.
나는 그 무리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자리를 잠시 비우고 돌아오면 내 책상엔 쓰레기가 가득했고,
요플레가 엎질러져 있었고,
체육복은 가위로 찢겨 있었고,
교과서는 물에 젖어 한 장 한 장이 눅눅하게 말라붙어 있었다.
연필깎이에 담긴 칼침은 비워져 있었고,
가방 안에는 껌이 붙은 휴지가 구겨져 들어 있었다.
나는 조용히 치웠다.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알리는 건 약자의 고백 같았고,
말해도 “정말?” 하는 말 한마디로 덮일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 애들은 나를 건드려도 괜찮은 사람으로 분류했고,
나는 그것을 바꿀 힘이 없었다.
가끔 생각한다.
그 애는 지금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아마 자기가 한 짓은 까맣게 잊은 채,
평범하고 반듯한 어른이 되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연애도 하고, 생일엔 친구들과 파티도 하겠지.
어쩌면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에게,
“누구 괴롭히면 안 돼” 같은 말을 하고 있을지도.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너무 쉽게 품어준다.
가해자는 빠르게 잊고, 피해자는 오래도록 기억한다.
가해자는 지나가듯 했지만,
피해자는 그 순간부터 인생의 결이 바뀐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책상 앞에 요플레를 엎질러 놓는 장면을 보면
숨이 턱 막힌다.
그 교실은 전쟁터였다.
싸움은 없었지만, 폭력은 일상이었다.
웃음 속에, 칠판 글씨 속에, 쉬는 시간의 소음 속에
나는 매일같이 조용히 상처받았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조용해졌고,
그 조용함은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다만, 견디게 했을 뿐이다.